[한·일 '노타이' 정상회담] 고이즈미 "항구적 비자 면제도 검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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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21일 제주 신라호텔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각료들이 배석한 가운데 얘기를 나누고 있다. [최정동 기자]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21일 제주도 정상회담에서는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양국의 협력을 한층 강화하자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북한은 핵 가격 흥정 중"=노 대통령은 신라호텔에서의 회담 후 공동회견에서 "3차 6자회담의 긍정적 전기를 살려 한.일 및 한.미.일 간의 긴밀한 공조를 바탕으로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과정을 가속화해 나가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특히 "희망이 없는 사람에게는 합리적 선택을 기대하기 어렵다"며 "북한이 안전보장, 개혁.개방의 성공에 대한 믿음을 갖게 하는 데는 일본의 입장이 매우 중요하다"며 일본 역할론을 강조했다. 남북 정상회담과 관련, 그는 "김정일 위원장의 입장으론 정상회담에서 북핵문제를 다루는 것이 북한 입지에 도움이 될지를 면밀히 계산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며 "김 위원장의 답방을 기대하기에 적절한 시점이 아니다"고 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이날 "한.미.일 3국은 북한 핵이 완전히 폐기돼야 한다는 목표에서는 일치하고 있다"며 "납치 문제와 핵.미사일 문제가 포괄적으로 해결되고 2002년 일.북 간 평양선언이 성실히 이행되지 않는 한 일.북 수교는 없다"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회견에서 독도문제에 관한 질문이 나오자 노 대통령은 "한국 정부의 입장은 분명하다. 이런 자리에서 재론할 필요을 느끼지 못한다"고 일축했다.

앞선 회담에서 노 대통령은 북핵협상과 관련, "물건을 흥정할 때는 질.수량.가격이 대상이 되는데 북한은 내놓을 물건은 다 내놓은 것 같다. 물건 자체를 속이려 하는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고 반기문 외교장관이 전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이제는 가격 흥정에 대해 모두 결단을 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이에 대해 "북한은 높은 가격을 기대하고 있는 것 같다"며 "상대방에게 희망을 줘야 한다는 데는 공감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과거사, 한.일 합의 어려워"=일본 기자에게서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에 대한 입장을 질문받은 노 대통령은 "때로는 너무 솔직하게 얘기하는 것이 아무런 소득이 없고 분위기만 나쁘게 하는 경우가 있다"며 임기 중 신사 문제를 쟁점으로 제기하지 않겠다는 뜻을 처음으로 밝혔다.

노 대통령은 "양 국민의 정서가 서로 다른 한 양국 정부가 이 문제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리거나 합의를 이루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한국 정부가 계속 강요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노 대통령은 그 대안으로 "양 국민 간의 활발한 민간 교류를 통해 인식 차이가 좁혀지면 그것을 토대로 양국 정부가 대화할 수 있을 때까지 좀 기다리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두 정상은 이와 함께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를 위한 다양한 방안도 제안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내년 3~9월 일본 아이치(愛知) 현에서 개최되는 만국박람회 기간 중 한국민에 대한 한시적 사증 면제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고이즈미 총리는 덧붙여 "그 결과를 바탕으로 항구적 비자 면제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회담에서 고이즈미 총리가 "지금 일본에선 한국 드라마 겨울연가가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다"고 하자 노 대통령이 "그러면 우리 둘이서 여름연가를 찍자"고 화답해 폭소가 터졌다.

이번 회담을 통해 격식 파괴의 셔틀외교가 정상회담의 새 모델로 선을 보였다. 두 정상은 노타이의 간편복 차림으로 공식일정을 소화했다.

북핵문제라는 화급한 현안이 있는 만큼 가장 가까운 이웃의 정상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자주 만나자는 취지였다. 두 정상은 22일 오전 한.일 양국에서 인기를 끌었던 영화 '쉬리'의 마지막 장면에 등장했던 벤치 등을 산책하며 친교의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서귀포=최훈 기자<choihoon@joongang.co.kr>
사진=최정동 기자 <choij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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