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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합의가 우선” 신중한 존엄사 입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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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대법원 판결에 따라 국내 처음으로 식물인간 환자의 인공호흡기를 뗐지만 존엄사법 입법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종교계는 물론 법을 집행하는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가족부도 “사회적 합의가 우선”이라며 소극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병까지 존엄사를 허용할지도 논란이 일 전망이다. 특히 김씨와 같은 식물인간을 어떻게 할지를 두고 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 신상진 의원이 발의한 존엄사법에는 식물인간이 포함돼 있지 않다. 서울대병원이 지난달 제시한 존엄사 지침에는 말기 암만 포함돼 있다. 서울대병원 허대석(혈액종양내과) 교수는 “식물인간은 다른 만성질환 환자를 존엄사 대상에 포함할지를 논의한 뒤 나중에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가 호흡기를 떼자마자 사망하지 않은 것을 두고 해석이 엇갈리는 부분이 있다. 일부에서는 김씨의 존엄사 허용이 다소 성급하지 않았느냐고 지적한다. 하지만 김씨 가족 변호인인 신현호 변호사는 “김씨가 호흡기를 떼자마자 운명하시는 게 부담스러웠다. 인공호흡기를 떼자 김씨의 고통이 줄었다. 고통스러운 연명을 하지 않겠다는 게 가족들의 뜻이었다”고 말했다.

김씨의 생존 기간이 길어지면 존엄사 입법이 더 힘들어질 수도 있다. 복지부 생명윤리안전과 이재란 사무관은 “쟁점이 없는 법안이라면 9월 정기국회에서 처리할 수 있겠지만 인간 생명을 다루는 법안인 만큼 사회적 합의를 토대로 법안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며 “일본·유럽처럼 법 없이 법원 판례로 존엄사 여부를 결정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의료계는 의료 현장 혼선을 줄이기 위해 당장 입법화를 하자고 촉구하고 있지만 종교계는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가톨릭대 이동익 생명대학원장은 “대법원의 판결은 어디까지나 김씨의 경우에만 국한된 판결인데 의료기관들이 유사한 환자들에게 적용할 위험이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법이 생기면 남용의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대한의사협회와 병원협회 등은 현재 존엄사 관련 표준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7~8월 중 초안이 나오면 사회 각계의 의견을 듣는 공청회를 열 계획이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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