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위기에 처한 이란의 시대착오적 신정 통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42면

청바지에 흰색 스니커즈를 신은 한 젊은 여성이 길에 쓰러진다. 두 명의 남자가 가슴을 누르며 응급치료를 시도하지만 소용이 없다. 바닥에는 피가 흥건하다. 이란 내 반(反)정부 시위 과정에서 한 여성이 가슴에 총을 맞고 쓰러져 죽어가는 장면을 담은 동영상이 전 세계 네티즌들에게 큰 충격을 주고 있다. 네다란 이름을 가진 27세의 대학생이다.

그는 유권자로서 정부에 항의했을 뿐이다. 대대적인 부정선거 의혹이 있으니 선거를 다시 하라는 것이다. 정당한 요구에 대한 대가는 싸늘한 총탄이었다. 오토바이를 탄 사복 민병대원 2명이 정조준해 그를 살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대선 결과가 발표된 13일부터 시작된 이란의 반정부 시위가 열흘 이상 계속되고 있다. 수도 테헤란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지금까지 수백만 명이 참가했고, 시위 과정에서 최소 19명이 숨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이란 정부의 보도통제 때문에 정확한 진상은 알 길이 없다.

이번 사태는 이슬람의 최고지도자가 실권을 가진 ‘신정(神政)통치’의 한계와 모순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신정통치하에서 절차적 민주주의는 장식품에 불과하다. 최고 종교지도자의 입맛에 맞지 않는 선거 결과는 얼마든지 조작될 수 있는 것이다. 이란 정부는 아마디네자드 현 대통령이 개혁파인 무사비 전 총리를 압도적 표차로 이겼다고 발표했지만 대다수 유권자들은 이를 믿지 않고 있다. 각종 증거가 부정선거 의혹을 뒷받침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정통치의 권위를 스스로 부정하는 꼴이기 때문에 쉽지는 않겠지만 이번 사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유일한 길은 전면 재검표나 재선거를 실시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무력 강경진압으로 일관한다면 일시적으로 시위를 잠재울 순 있어도 영원히 잠재울 순 없다. 이란 인구의 70%가 1979년 혁명 이후에 태어난 30세 미만의 젊은 층이다. 이번 시위의 주역도 그들이다. 이대로 가면 제2, 제3의 네다가 나올 수밖에 없다. 시민의 민주적 요구를 수용하는 용단이 없는 한 이란의 시대착오적 신정통치는 내리막길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