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절대 음감은 축복?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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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호 07면

“우리 애가 한번 들은 음악을 그대로 따라 해요.”
한국예술영재교육연구원의 원장인 이영조 교수가 ‘지겹게’ 듣는 이야기라고 합니다. 아이 손을 이끌고 온 학부모의 말이죠. 부모의 마음이 떨리는 순간은 또 있습니다. “아빠 코 푸는 소리가 ‘솔’로 들려요.”(『뮤지코필리아』, 올리버 색스) 엄마는 모차르트가 될지도 모르는 아이의 손을 이끌고 누구라도 찾아가보고 싶죠. 그 어떤 소리를 들어도 절대 음으로 들리는 ‘절대 음감’은 마치 ‘천재’의 동의어처럼 쓰이고 있습니다.

김호정 기자의 클래식 상담실

절대 음감은 물론 음악가에게 좋은 재능입니다. 피아노 건반처럼 음이 쪼개져 있지 않은 바이올린을 생각해봅시다. 이 경우 ‘도’와 ‘레’ 사이에도 수많은 음이 있겠죠. 예민한 바이올린 연주자들은 약 8개의 음까지 쪼개서 듣습니다. 이 중에서 가장 정확한 음을 골라 연주하는 데에는 절대 음감이 큰 도움을 주죠. 하지만 절대 음감은 그렇게 흔하지 않습니다. 신경정신과 의사인 올리버 색스는 1만 명에 한 명꼴 정도라고 보네요. 이영조 교수에게 선을 보이러 온 아이는 음악적으로 완전히 똑같은 음을 연주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완벽한 절대 음감을 가진 사람이라고 음악 또한 완벽하게 하지는 않습니다. 유독 한국에서는 절대 음감에 대한 신념이 맹목적인 편입니다. TV의 쇼 프로그램에서 책상 두드리는 소리의 음 이름을 맞히는 출연자를 두고 “천재가 났다”며 기뻐하죠. 음악에서 재주와 기술을 특히 중요시하는 우리나라에서 절대 음감이 신기한 볼거리가 된 것도 어찌 보면 자연스럽습니다.

하지만 모차르트는 “지독한 절대 음감 때문에 오히려 조금만 음정이 풀려버린 악기로 연주할 때면 온통 잘못된 음악을 듣는 것 같아 방해가 된다”고 털어놓은 적도 있답니다. 같은 음악을 다른 조(調)로 연주할 때도 절대 음감은 불리합니다. 조성만 바꿨는데도 ‘파란 사과’ ‘빨간 바나나’를 보는 것처럼 불편하기 때문이죠. 유연성이 부족한 편인 거죠.

이영조 교수는 “우리 아이가 절대 음감”이라며 찾아온 학부모 대부분을 돌려보낸다고 합니다. 그는 발레의 예를 들었습니다. “춤을 출 때 회전을 많이 한 후에도 어지러움을 덜 느끼는 아이들이 종종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그 아이를 발레의 천재라고 하지 않죠. 절대 음감도 뛰어난 음악가의 보증 수표는 아닙니다. 후대 성악가에게 ‘넘지 못할 벽’으로 남은 루치아노 파바로티는 심지어 악보조차 보지 못한다는 루머에 시달렸죠.

조수미는 완벽한 절대 음감을 자랑하지만, 그가 세계 무대에서 러브콜을 받는 이유는 그 때문이 아닙니다. 음악 전체를 보고, 자신의 감정을 아름답게 표현하고, 무대 전체를 장악하는 카리스마 덕이죠. 그만의 독특한 음색, 요염한 표현력 등이 감동을 줍니다. 절대 음감만 믿는다면 ‘재주꾼’에 그칠 위험이 있습니다. 있으면 좋지만 맹신하면 독이 될 수 있는 재주, 절대 음감의 두 얼굴이랍니다.



중앙일보 문화부의 클래식·국악 담당 기자. 사흘에 한 번꼴로 공연장을 다니며, 클래식 음악에 대한 모든 질문이 무식하거나 창피하지 않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A 때로는 장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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