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혼을 품고 산 소년, 어머니를 그리워하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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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호 13면

어머니를 가없이 그리워하는 아이가 있었다. 어머니는 그를 낳고는 막 바로 돌아가셨다. 저주 때문에 분만을 할 수 없게 되자 스스로의 손으로 배를 갈라 자신을 꺼내 준 분이다. 그 혼은 하늘로 돌아가지 못하고 그의 몸에 붙었다. 아이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11년간 곤륜의 산속에서 선도를 수련하게 만든 일념이었다. 19세가 된 아이는 스승의 도움으로 어머니의 혼을 보고, 세 마디의 말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조현욱 교수의 장르문학 산책- 임준욱의 무협소설 『괴선』

대화를 중개해 주는 스승은 묻는다. “무엇을 말하고 싶으냐? 무엇을 묻고 싶으냐?”
하고 싶은 말, 묻고 싶은 말이 수십만 개 쌓여 있건만, 막상 눈앞에서 실제와 같은 그 포근한 미소를 보고 있으니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는다.

아들이 묻는 것은 세 가지다. “내 안에 계시면서 불편하지 않으신가, 여쭤 주십시오.” “아버지와는 행복했었냐고 여쭤 주십시오.” “내게 하실 말씀이 있는지 여쭤 주십시오.”
문답을 마친 어머니의 혼은 다시 모습을 감추기 전에 한마디, 입 모양으로 말한다.

“울-지-마, 내-아-기.”
임준욱의 소설 『괴선(怪仙)』에서 가장 가슴 저리는 장면이다. 당신에게 어머니는 어떤 존재인가. 생각하면 마음이 따스해지며, 그리움에 가슴이 먹먹해지는 분인가. 그렇다면 이 소설을 읽어 보라. 그렇지 않다면, 더 더욱 이 작품을 읽어 보라. 이제라도 어머니와 화해할 수 있을 테니까.

괴선은 한 아이의 성장기다. 저주 때문에 아홉의 다른 영혼을 품게 된 주인공. 자신의 영혼을 지키기에도 힘겨워 꿈을 꾸지 못하는 아이. 마침내 연이 닿아 어머니의 영혼과 조우하고 여덟 혼령을 봉인한다. 주인공은 강호로 나서고, 세상을 배우고 사랑을 얻으며 마침내 괴이한 신선, 괴선이 된다.

여기서 작가가 그려내는 것은 사람 사이의 ‘정’이다. 그의 무협은 착하다. 적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 이익 앞에서는 도의가 사라지는 비정강호를 말하지 않는다. 그는 강호를 배경으로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를 한다. 인간끼리의 갈등이 있고, 저마다 인과관계로 부딪히지만 그로 인해 상처받고 고뇌한다.

이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따스하다. 인간의 선한 본성을 믿는다. 그의 소설에는 악당이 없다. 그저 세상을 보는 눈이 다르고 추구하는 목표가 다를 뿐이다. 악역도 사연이 있어서 나쁜 짓을 하고 그 때문에 번민한다. 선역도 악역을 죽이는 것으로 상황을 종결시키지 않는다. 그의 무협은 영웅이 악당을 때려잡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는 비정한 현실 속에서 희망을 찾고자 하는 따스한 심성에 주안점을 둔다.

그의 작품은 무협 팬이 아닌 사람에게도 부드럽게 읽힐 수 있는 것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진가소전』『농풍답정록』『건곤불이기』『촌검무인』『쟁천구패』가 모두 그렇다. 『괴선』은 청어람에서 2004년 2월 제6권이 완간됐으나 지금은 절판됐다.


조현욱 한국외국어대 언론정보학부 초빙교수. 중앙일보에서 문화부장과 문화담당 논설위원을 지냈다. 무협소설과 SF 같은 장르문학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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