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기금모금 등 TV프로등에 사랑의 손길 넘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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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세상은 각박해도 인정은 살아있다.

실직자는 흘러 넘치고, 장바구니 물가는 하늘 높은줄 모르고 뛰어오르는데도 사람들은 서슴없이 지갑을 연다.

콩나물값 1백원을 깎으려고 시장통에서 씨름하는 아주머니도 백혈병에 걸린 아이의 눈망울에, 쌀이 없어 도시락을 못싸는 학생들을 위해, 선뜻 돈을 내놓는다.

IMF의 어두운 터널을 다 함께 헤쳐나가기 위해 TV방송사와 라디오, 민간단체 등에서 개최하는 각종 기금 마련 행사가 유난히 많은 올해. 여기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행렬도 끊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올해 초입부터 열린 '금모으기' 행사에 3백49만명이 참가, 2백25t (21억7천만달러 상당)에 이르는 금이 수집돼 전 세계를 놀라게 한데 이어, '실업기금 모금' '결식아동 돕기 사랑의 먹거리 나누기' '고셔병 어린이 돕기' 등의 행사에는 매번 예상을 뛰어넘는 수의 참여자가 줄을 잇고 있다.

3월17일부터 매주 한차례씩 열리고 있는 MBC 실업기금모금 생방송 '실업의 고통 함께 나눕시다' 에 모인 성금은 38억7천2백여만원. SBS 장애인의 날 특별생방송 '사랑의 한걸음' 에는 37만명이 참여, 7억원이 마련됐다.

MBC가 5월6일 개최한 '사랑의 먹거리 나누기 운동' 에는 약1억1천여만원의 성금이 접수됐으며, 행사가 끝난 다음날까지도 1천6백만원이 넘는 후원요청이 추가됐다.

1회성으로 끝나는 기금마련 행사뿐 아니라 정기적인 이웃돕기 모금 프로그램에도 인정이 넘친다.

전화 한통에 1천원이 성금으로 접수되는 KBS의 '사랑의 리퀘스트' (토 저녁7시35분)에 지난 7개월간 접수된 전화는 6백9만5천통. 모금된 돈은 60억9천8백50여만원이다.

한 가구에서 한통만을 걸수 있으니, 숫자상으로는 전국 가구수의 2분의1 가량이 참여한 셈이다.

성금뿐 아니다.

중소기업 돕기 기금모금 프로그램인 '사장님 힘내세요' (KBS1 일요일 저녁5시25분)에는 어려운 기업에 전해달라고 부쳐오는 쌀 한가마, 목장갑 5천켤레, 손수만든 보리빵 등 갖가지 정성어린 선물들이 답지한다. 36면 '情' 서 계속 여기에 참가하는 사람들의 사연도 따듯하다.

그들 대부분은 결코 여윳돈이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내가 그 아픔을 아니까, 어려울 때 베푸는 작은 도움의 힘을 아니까" 성금을 보낸다고 했다.

이처럼 모금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중.하류 계층이라는 점은 금모으기 캠페인 때와 같다.

이는 넘쳐나는 성금 모금 캠페인이 때로 비판적인 눈길을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연세대 사회학과 조혜정 교수는 "고속성장의 과정에서 남을 딛고 올라서야만 상류층에 편입될수 있었던 때문인지 우리나라의 상류층들은 남의 어려움을 쉽게 외면하는 경향이 있다" 며 "IMF를 계기로 체계적인 구호.복지시절을 구축해 상류층에서도 지속적인 구호활동을 펼칠수 있도록 해야한다" 고 강조한다.

"먹고 살기위해 정신없이 살았다. 그러나 이제 갑작스레 불행을 당하고 보니 내 이웃들의 어려움이 바로 내일처럼 느껴진다.

앞으로도 틈틈이 남을 도우려 한다" 는 주부 김경순씨 (39) 의 얘기처럼, 이제 우리는 IMF시대를 맞아 오히려 어려움을 슬기롭게 극복해 나가는 법을 익혀나가고 있다.

박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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