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발견] 이주 노동자 알엄, 영화배우 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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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최근 이주노동자를 소재로 한 독립영화 두 편에서 눈에 띄는 외국인 배우가 있다. 4일 개봉한 심상국 감독의 ‘로니를 찾아서’와 25일 개봉하는 신동일 감독의 ‘반두비’에 출연한 방글라데시 출신 마붑 알엄(32)이다. 알엄은 ‘로니를 찾아서’에서는 태권도장 사범 인호(유준상)를 한 방에 보내버리는 불법체류 노동자 로니 역으로 출연했고, ‘반두비’에서는 1년치 임금을 고의로 체불한 악덕 고용주를 찾아다니는 청년 카림을 연기했다. 두 편 다 4월 제10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다.

영화 ‘반두비’의 한 장면. 실제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 출신인 알엄(右)이 동남아인 이주노동자역을 맡았다. 왼쪽은 여고생 민서 역할을 맡은 백진희. [인디스토리 제공]

알엄은 직업배우가 아니다. 1999년 한국에 온 10년 된 이주노동자다. 그도 여느 동료들처럼 공장에 취업해 일하다 이주노동자 권익 보호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이후 ‘이주노동자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2007년 ‘쫓겨난 사람들’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연출하는 등 미디어 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다. 활동 중에 만난 한국인 여성과 2004년 결혼도 했다.

첫 주연작 ‘반두비’ 출연 이유에 대해서도 알엄은 “내 이야기 같아서”라고 말했다. 이 영화는 당돌하지만 철든 여고생 민서(백진희)가 버스 안에서 우연히 카림을 만나게 돼 함께 밀린 임금을 받으러 다니는 이야기다. 버스 좌석이 비어도 동남아인 옆에 앉는 걸 꺼릴 만큼 편견이 있던 민서가 카림과 정이 들면서 시나브로 자신의 마음을 열게 되는 과정이 그려졌다. 영어학원 강사로 대표되는 서구인에 대한 맹목적인 환대와 카림을 통해 목격되는 동남아인 이주노동자에 대한 멸시와 푸대접이 대조를 이루면서, 한국 사회가 외국인에 대해 갖는 시각의 불합리함을 지적한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현실을 얼마나 반영했느냐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한국영화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소재와 접근이라는 점은 높은 점수를 받을 만한 작품이다.

신동일 감독과 그가 인연을 맺은 건 지난 해 신감독이 연출한 ‘나의 친구 그의 아내’에 알엄이 단역으로 출연하면서다. 여주인공이 일하는 미용실의 유리를 갈아끼워주는 인부 역이었다. 신 감독은 “하루만 찍으면 되는 단역인데 예비의상을 10벌이나 준비해와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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