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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총독부 토지조사사업 완료…하루아침에 대지주 된 일인 부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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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1918년 6월 18일은 조선총독부가 식민통치의 기틀을 다지기 위해 1910년부터 8년 동안 전 국토를 대상으로 실시한 토지조사 사업이 끝난 날이다. 이 사업으로 대한제국 황실과 정부 소유 땅, 마을 또는 문중의 공유지, 그리고 황무지들은 모두 총독부 소유가 되었으며, 땅을 앗긴 수백만의 농민들은 소작농으로 굴러떨어졌다. 대지주가 된 총독부는 토지를 동양척식주식회사를 비롯한 후지(不二)흥업 등 토지회사와 이주민들에게 헐값으로 내주었다. 사대관모를 차려 입고 원삼에 족두리로 치장한 나이 든 신랑·신부(사진=독립기념관 소장)는 그때 조선으로 건너와 대지주가 된 일본인 부부다. 그들은 전통적 양반 지주들과는 다른 얼굴의 ‘흡혈귀’였다.

당시의 일제는 우리의 토지를 약탈한 드라큘라였다는 것이 우리 시민사회의 보편적 역사기억이다. 드라큘라에게 피를 빨리지 않았다면 한 세기 전 개화기에 우리 민족은 이미 자력으로 근대화를 이루었을 터인데 일제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는 것이다. 냉전시대에 우리는 영화처럼 피아와 선악 구분이 선명한 이분법으로 식민지 시대를 보았다. 그때 누구도 식민지 시절 수탈이 있었을 뿐 개발은 없었다는 한국사학계의 공든 탑 ‘수탈론’에 물음표를 달지 않았다.

냉전이 깨진 후 민족과 민중을 주어로 하는 ‘내재적 발전론’은 통계라는 객관적 지표를 앞세운 경제성장 사학자들의 거센 도전에 직면했다. 이들은 조선 후기에 자생적 근대의 싹이 텄었다고 보지 않는다. 드라큘라에 물린 희생자 역시 흡혈귀가 되듯이 1960년대 이후 한국의 급속한 경제 성장의 기원은 드라큘라에게 피를 빨린 식민지 시대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착취를 위한 토지조사 사업도 근대적 토지 사유(私有)제도 확립을 통해 해방 후 경제발전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식민지 시대에 수탈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개발도 병존했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에 일격을 당한 철옹성 민족주의 담론은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오늘 우리 시민사회에는 타자에 대한 차별과 배제를 유발하는 민족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보는 사람들이나, 환경파괴와 대량살육이 자행된 근대가 무엇이 좋다고 따라 하지 못해 안달이냐고 비판하는 이들도 존재한다. 탈민족과 탈근대를 외치는 이들의 눈에는 ‘식민지 근대화론’도 드라큘라 되기를 꿈꾸는 근대지상주의라는 점에서 민족주의 담론과 한배 속 쌍생아로 비칠 뿐이다. 보다 나은 미래사회를 만들기 위해 충돌하는 역사기억 사이의 간극 좁히기가 더없이 필요한 오늘이다.

허동현(경희대 학부대학장·한국근현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