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수출전략'이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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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한국영화 수출은 언제까지 '희망사항' 에 머물러야하나. 24일 폐막된 칸영화제는 4편의 우리 영화가 처음 초청을 받은 영화제였으나 견본시에서 한국영화는 그 흔적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삼성영상사업단과 영화진흥공사가 공동으로 '코리안 시네마' 부스를 차렸지만 영화제 기간내내 관계자들은 차마 말붙이기 어려울 만큼 '스트레스' 에 시달리는 눈치가 역력했다.

삼성영상사업단은 싱가포르에 '물위의 하룻밤' 과 한중합작 영화 '마이 라이스 누들숍' 을 총괄판매하고, 독일에 '런어웨이' '진짜 사나이' 의 비디오판권 등 모두 20만달러어치를 판매했다.

독일에서 활동하는 한국배급사 손에손의 경우 '넘버3' '악어' 등 6편을 선보였으나, 영화제 이전에 '아기공룡둘리' 를 독일에 25만달러로 판매한 것이 고작. 역시 협상.홍보 등의 성과에 만족해야 했다.

세계의 틈새시장을 겨냥한 '용가리' 가 사전판매에서 약 3백만달러의 계약협상을 했지만 확정된건 아니고,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용가리' 가 한국영화를 대표하기엔 아쉬움이 많다. 칸에서 외국 바이어들과 협상을 벌여온 한 영화관계자의 말. "서구 사람들이 일본.홍콩.대만은 알아도 한국은 아직 모른다. 한국문화를 일본이나 중국문화의 '부산물' 쯤으로 알고 있는 것 같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현실이 그렇다. " 인지도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사운드와 번역자막 등이 해외시장규격을 갖추지 못한 점이 더 문제였다.

영구아트무비 대표 심형래씨는 "이전에 판매한 영화들이 사운드에 문제가 있어 12개국에서 '퇴짜' 를 맞고 필름을 되돌려 받은 경우가 있었다" 고 털어놓았다. 심씨는 이때의 '뼈아픈' 경험이 오히려 제작에 심혈을 기울이게 한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허술한 번역은 거의 고질병. 국내에서 흥행을 기록한 모영화의 경우 수출직전에 '삽입곡' 의 저작권이 문제가 돼 해외세일에서 망신을 당한 일도 있다.

저작권료를 지불하지 않고 해외 유명그룹의 노래를 '겁없이' 삽입했다가 극장 개봉분에 대한 저작권료를 약 3천만원 지급하고, 해외판매용과 국내 비디오에서 음악을 갈아끼우는 수모를 겪었다. 견본시에 참가한 한 관계자는 "전시용 포스터나 프로모션 테이프등 아직 기본적인 것도 해결이 안된 상태" 라고 했다.

홍보와 배급에 대한 기초가 없다는 것이다.

'강원도의 힘' '8월의 크리스마스' , 그리고 '아름다운 시절' 등이 포르티시모 (네덜란드) 와 셀룰로이드드림 (프랑스) 등 해외배급사에 판매를 위탁한 것은 이러한 현실을 그대로 대변해준다.

"이제 한국 영화수준은 궤도에 올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는 해외시장을 지레 포기해버리는 제작자들에게 있다. 본격적으로 해외세일을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 독일에서 한국영화 판매에 팔을 걷어부친 손에손 대표 손경우씨의 당부였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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