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64명예기자 코너]23일 서초구청장 유세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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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독자와 함께하는 본사의 '9864 열린취재본부' 에서는 명예기자 희망자를 모집, 1차로 4명을 뽑아 23일부터 본사 기자와 함께 선거현장에 투입했다.

명예기자들이 취재한 선거 양상.실태를 소개한다.

23일 오후3시 합동연설회가 열리는 시간이 임박했는데도 청중이 모이지 않았다. 경원중학교 운동장 한가운데 젊은이 몇 명만이 눈에 띄었다.

'자원봉사한다' 는 젊은 선거운동원들은 연단 바로 앞자리를 잡아두기 위해 피켓을 운동장바닥에 늘어놓고 지키고 있었다. 저 자리를 누가 메울까 궁금했다.

궁금증은 한나라당 (조남호.현구청장).자민련 (황철민.전구청장).국민신당 (차일호.지구당위원장) 의 세 후보가 들어서면서 풀렸다. 운동원들이 동시에 대거 몰려왔다.

어떤 후보는 1백명이 넘는 자원봉사자들을 몰고 등장했다. 자원봉사자들은 후보를 에워싸고 유세장으로 들어와서는 잡아둔 앞자리를 차지했다.

그렇게 모인 사람이 대략 3~4백명 정도. 순수하게 찾아온 청중, 피켓이나 플래카드를 들지않은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연설이 시작되자 사람들이 운동장 가장자리 그늘로 빠지기 시작했다.

일부는 다른 후보의 연설도중 자기들이 지지하는 후보의 이름을 연호해 연설을 방해하기도 했다.자기 진영 후보의 연설이 끝나자 무리를 지어 연설장을 떠나버리는 경우도 많았다.

유세장은 후보들끼리 세 (勢) 를 과시.타진하는 대회가 되고 말았다. 시민단체연합인 공선협의 자원봉사자 裵모씨 (28.자영업) .자신의 가게를 친지에 맡기고 금권.타락을 감시하기 위해 유세장에 나왔다.

裵씨는 "우리는 자원봉사자가 부족한데, 유세장에는 자원봉사자가 많아요" 라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는 "서로가 상대진영의 자원봉사자에 대해 '돈으로 고용했다' 고 주장하지만 확인이 어렵다" 며 시민단체 감시활동의 한계에 답답해 하기도 했다.

- 김태영 (24.서울대국제경제학 4년) -

"구청장도 선거로 뽑나요. " 23일 오후 서초구청장후보 합동연설회장으로 가는 길에서 만난 한 대학생의 반응이다. 합동연설회가 열린다는 사실은 물론 후보가 누구인지, 그들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우리 손으로 뽑아야 할 사람인지조차도 모르고 있었다.

"연설회, 그거 들으나마나지 뭐. " "관심 없어요. 토요일 오후에 뭐하러 거길 가요. " 이 정도는 점잖은 반응들이다. "IMF로 먹고 살기도 힘든데 선거로 낭비할 돈이 어디 있다고 선거니 유세니 하는거요. " 최근 직장을 잃었다는 崔모 (46) 씨는 선거와 유세에 대한 적대감마저 감추지 않았다.

연설회장은 썰렁했다. 서울시내 기초단체장 (구청장) 선거중 전.현직 구청장이 맞붙어 치열한 경합이 예상된다는 곳인데도 유세가 시작되기 직전까지 청중이 거의 모이지 않았다.

연설도 청중이나 유권자를 위한 것이라기보다 그냥 연설을 위한 연설이 되고 말았다. 어떤 후보는 "구민들에게 공짜로 생수를 제공하겠다" 는 현실성 없는 공약을 내놓는가 하면 어떤 후보는 " (상대방에 대한) 비난발언은 않겠다" 면서도 비난성 발언을 빼놓지 않았다.

또 어떤 후보는 정책.비전제시보다 과거 경력과 업적을 자랑하느라 시간을 다 소비했다. 후보자들의 연설을 듣고서는 누가 서초구를 위해 일할 사람이고, 누가 어떤 일을 해줄 인물인지를 판단하기 힘들었다.

예전의 흥청망청하던 '돈 선거' 는 외형상 수그러들었지만 상대적으로 유권자들의 무관심은 더 깊어졌다. 어떻게 해야만 효율적인 민주주의, 건전한 선거풍토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생각해야할 때다.

-조희숙 (38.서초4동.주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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