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으로]중국 허짜이푸 교수 지음 '권력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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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우리 현대사의 비극은 어쩌면 권력의 비극. 해방 이후 많은 정권이 들어섰지만 합리적 권력행사, 더 나아가 공정한 인재등용은 아직 난제로 남아있다.

잇따른 인사 잡음을 겪고 있는 새 정부도 이런 점에서는 예외가 아니다. 중국 지린 (吉林) 대 법학원 교수인 허짜이푸 (곽存福) 의 '권력장 (權力場)' 은 우리의 현실을 반추하게 하는 책이다 (푸른숲刊) .요.순 시대부터 청나라까지 중국 정치사에 나타난 다양한 권력행사 유형을 통해 권력의 본질과 올바른 권력행사 방식을 천착하고 있기 때문. "역사는 지나간 것이지만, 현재도 포함하고 있으며 더욱이 미래를 예견하게 하는 백과사전이다" 라는 저자의 말처럼 과거의 경험에서 배워야 할 교훈을 끌어낸다는 점에서 온고지신 (溫故知新) 의 지혜를 보여준다. 우선 책의 체제부터 흥미롭다.

크게 황제.재상.관리편으로 3등분하고 개개의 유형을 살피고 있다.

오늘날에 대입하면 대통령.총리.장관인 셈. 주로 정치제도에 초점을 맞춘 기존의 책들과 달리 인간과 인간의 갈등관계로 정치를 바라보고 있어 새롭게 다가온다. 일반기업이나 단체의 조직관리 혹은 역할분담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도 된다.

무엇보다 저자는 권력분산에 무게를 싣는다.황제나 재상, 재상이나 관리 사이의 일방적 관계가 아닌 양자의 적절한 균형을 키워드로 제시하고 있는 것. 일례로 그는 황제를 크게 친정형 (親政型) 과 위임형 (委任型) 으로 구분한다.

재상과 관리도 비슷한 유형으로 나누고 있다.'친정형' 은 제왕이 최대한 많은 정무를 독자적으로 처리하는 스타일을, 위임형은 아래 사람들에 정사를 위임해 성공을 책임지게 하는 스타일을 가리킨다.

그런데 저자는 놀랍게도 절대군주 체제였던 고대 중국에서조차 친정형보다 위임형이 훨씬 큰 설득력과 효율성을 유지해 왔다고 역설한다.

공자.맹자.노자.한비자 등 제자백가에 대한 분석부터 시작해서 위임형에 손을 들어주고 있다. "군주가 일의 요점을 잘 알면 모든 일이 치밀하게 이루어 지지만, 세세한 것을 챙기길 좋아하면 모든 일이 어긋난다" (순자) , "요점을 군주가 쥐며 세부적 일은 신하가 힘써야 한다" (장자) 는 말처럼 권력의 본질은 힘의 균형에 있다는 해석. 하루에 1백20근이나 되는 죽간 (竹簡) 으로 된 보고서를 읽고 그날의 업무량을 채우지 못하면 침식도 잊을 정도였으나 결국 혹독한 전제정치로 무너진 진시황을 반증 (反證) 으로 들고 있다.

때문에 저자는 군주가 사용해야 할 권술 (權術) 로 중단참관 (衆端參觀.여러 방면에서 의견을 듣고 취한다) , 필벌명위 (必罰明威.벌은 반드시, 그리고 위엄있게) , 신상진능 (信賞盡能.상은 믿음으로 각자 능력을 다하도록) 등 7가지를 제시한다.

또한 군주를 보좌하는 재상에게는 아부하지 말라, 권력의 칼자루를 다투지 말라, 현자를 추천해 나랏일을 돕게 하라 등의 충고도 잊지 않는다.

이처럼 저자는 서양의 민주주의와 관계없이 동양도 예로부터 군신간 협조와 역할분담을 통해 저력 있는 정치를 펼쳐왔다는 사실을 쉬운 문체와 풍부한 사례로 설명하고 있다. 전대미문의 경제난과 어수선한 지방선거 국면에서 우리 위정자들, 그리고 국민 모두가 다시금 곱씹어야 할 대목이다.

박정호 기자 〈jhlogo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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