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 시평

학교 선택권 되돌려 줘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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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외국인 총장을 맞는다고 해 기대가 높다. 외국인이 우리 교육에 기여한 예는 많다. 연세대와 이화학당은 외국인 선교사들에 의해 설립.운영됐다. 서강대는 외국인 신부들에 의해 1960년 설립된 이래 불과 10년 만에 명문 사학으로 발돋움했다. 서강대가 짧은 시간에 발전한 데는 엄격한 학사 관리가 큰 몫을 했다. 예컨대 당시 다른 대학에선 수업의 앞뒤 수십분씩 잘라먹는 일이 다반사였는데, 이 학교에서는 시작종이 울림과 동시에 교수가 들어가고 종료종이 쳐야 수업을 마칠 수 있었다. 반면 우수한 교수에 대한 보상은 파격적이었다. 당시 서울대에서 자리를 옮긴 모 교수는 이전 학교에서는 봉급이 쌀 한 가마니 값 정도였는데 여기 오니 쌀 세 가마니를 사고도 남더라고 회고했다. 요컨대 차별화된 인센티브 시스템을 통해 도덕적 해이를 방지함으로써 성실한 인재를 길러낸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특성이 요즘 우리나라 교육현장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거의 모든 학교가 비슷비슷해 공립인지 사립인지 분간이 안 된다. 이는 특히 초.중등교육에서 더욱 심하다. 천편일률적 교과 과정, 차별화하지 않은 수업, 열심히 해도 결과는 똑같은 교사 봉급체계 등 한마디로 획일주의가 지배하는 교육현장이 되고 말았다. 그러다 보니 정부가 공교육 내실화를 강조할수록 학부모들은 반대로 사설학원으로 자녀를 보내고 있다. 또 외국으로 조기유학을 보내느라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는 부모도 많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한마디로 우리의 교육제도가 지난 수십년간 수요자의 선택과 인센티브를 무시한 채 정부가 공급을 독점하는 공공독점 체제로 변해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공독점하에서 이제는 모두가 피해자가 되고 있다. 선택의 자유를 뺏긴 학부모.학생은 말할 것도 없고 학교와 교사도 피해자다. 학교는 평준화로 인해 학생을 선발할 권리가 없으며 각종 규제로 인해 질 높은 교육을 만들 인센티브가 없다. 교사들은 열심히 해도 차별화된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 그러니 우수한 인재들은 교사를 지망하지 않고 그나마 우수한 교사들도 학교를 떠난다.

공공독점의 보다 무서운 폐해는 어린 학생들이 특정한 목적의식으로 만들어진 교육을 무방비로 수용하게 된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권위주의 정부가 이를 이용한 경향이 있었으나 요즘은 전교조 같은 단체가 반전수업 등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니 백성들은 예나 지금이나 일방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21세기에 튼튼한 국가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시대에 맞는 인재를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 21세기의 인재는 창의적이고 자기학습능력을 갖춰야 한다. 창의적이고 자기학습능력을 갖춘 인재는 자유롭고 차별화된 환경에서 만들어진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공공독점의 획일적 교육시스템으로는 이런 인재를 만들 수 없다. 우리 교육제도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무엇보다 사립학교에 자율성을 돌려줘야 한다. 최소한 사립고교 이상에서는 학생 선발과 등록금 책정을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한다. 고교 평준화를 없애면 인간성이 황폐화할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나의 세대는 중학교.고등학교.대학교를 모두 입시로 진학했지만 요즘 젊은이들에 비해 인간성이 피폐했다는 증거를 발견하기 어렵다.

그리고 외국 학교의 국내 분교를 자유롭게 운영할 수 있도록 해 학생들에게 글로벌한 교육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일부에서는 귀족학교 탄생의 위화감과 국내 대학의 몰락을 걱정하는데 귀족학교가 몇 개 생긴다고 해서 잘못될 일은 무엇인가? 또 지금까지 개방경험에 비춰 우리나라 사람들은 개방적인 환경에서 오히려 더 성공적으로 적응하는 것을 봐오지 않았는가?

정부는 이제 빼앗아간 선택의 자유를 민간에 되돌려주기 바란다. 그래야 모두가 산다.

남성일 서강대 교수.경제학

◇약력 : 서강대 졸업. 미국 로체스터대학 경제학 박사. 미국 시러큐스대학 교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겸 오피니언리더스 프로그램 주임교수. 저서 '한국의 노동생산성과 적정임금'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