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냐 물가냐 … 한은, 타이밍 고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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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11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뉴스 분석  경제는 심리라지만 정책은 타이밍이다. 경기회복을 위해 풀어 놓은 막대한 돈을 언제 환수할 것이냐도 마찬가지다. 서두르면 경기가 다시 고꾸라지고, 때를 놓치면 인플레이션(물가의 지속 상승)이라는 병에 걸리기 십상이다. 바로 그 타이밍을 놓고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의 고민은 이미 시작됐다. 경기회복을 위해 잠시 접어뒀던 ‘인플레 파이터’의 면모가 언제 다시 드러나느냐가 시장의 관심사다.

한은은 11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연 2%인 기준금리를 4개월 연속 동결했다. 또 돈을 푸는 금융 완화 기조를 이어가겠다고 했다. 표면적으론 달라진 게 없지만 변화가 보였다. 이 총재는 금통위 후 기자간담회에서 “경기 하강세는 거의 끝났다”고 말했다. “하강세가 완만해졌다”는 종전의 발언보다 한 걸음 더 나간 것이다.

다만 “하반기 이후 경제가 호전될 것이라고 말하긴 이르다”고 덧붙였다. ‘바닥’이라는 표현도 삼갔다. 그는 “지난해 10월에서 올 1월까지 경기가 급속히 추락했지만 2~5월엔 더 내려가지 않았다”며 “급속한 하락세는 끝난 것 같지만 다시 치고 올라갈 것인지는 불투명하다”고 설명했다. 회복을 확신하지 못하는 이유는 경기 하강이 멈춘 것이 경제 자체의 자생적 힘이 아니라, 나랏돈이라는 ‘완력’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도 재정의 약발이 다하는 하반기엔 경기가 다시 하강할 위험이 있다고 본다(삼성증권 전종우 거시경제파트장).

그렇다고 한은 본연의 임무인 물가 안정을 쉽게 생각할 수 없다. 최근 들어 경기 회복 이후 초인플레가 닥칠 것이라는 경고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지난달 8일 “경기가 9~10월께 전환점을 맞고 내년 상반기에는 완연한 회복세로 돌아설 것”이라며 “위기가 끝나면 급격한 인플레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선진국의 경기 전망도 점차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다. 이 총재는 “물가가 수치상으론 안정되겠지만 원자재 가격과 공공요금 인상 등으로 오를 위험이 커진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시중의 단기 부동자금도 시한폭탄이다. 이에 대해 그는 “돈을 푸는 정책을 썼는데 100% 순기능만 나타날 순 없다”며 “부작용이 나타나는지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럼 이 총재가 행동에 나설 시점은 언제일까. 일단 선진국 중앙은행들이 금리 인상에 나서는 것과 보조를 맞출 공산이 크다. 그는 “선진국 경제가 좋아져 각국 중앙은행이 통화 정책에 변화를 준다면 우리의 수출 상황이나 국내 경제 주체의 심리에도 변화를 준다”며 “당연히 한은의 정책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고 말했다.

이날 이 총재의 발언 강도는 시장의 예상을 다소 넘어섰다. 이 때문에 채권시장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날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연 4.22%로 전날보다 0.18%포인트 급등했고, 5년 만기 국고채 금리도 0.19%포인트 오른 4.97%로 마감했다. 금융연구원 장민 거시경제연구실장은 “경기 흐름이 점차 개선된다면 4분기께 한은이 한 차례 금리 인상을 할 가능성이 있다”며 “시장금리는 이를 미리 반영하는 만큼 당분간 상승세를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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