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승률 88.8% ‘무서운 질주’ 스무 살 김지석이 달라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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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석(사진) 5단이 활짝 피어나고 있다. 2009년 들어 23승3패. 연초 파죽의 14연승을 달리다가 중도에 끊겼지만 다시 8연승으로 질주하고 있다. 만 20세가 되더니 드디어 감을 잡은 것일까. 승률은 88.8%로 단연 1위. 다승 부문에선 응씨배 우승으로 상종가를 치고 있는 최철한 9단(24승7패)에 이어 2위다.

일찍이 천재로 소문났고 조훈현 9단이 이창호 이후 두 번째 내제자로 받아들이고 싶어 했던 소년이 바로 김지석이었다. 그러나 김지석은 기대만큼 빠르게 성장하지 못했다. 14세 때 프로가 된 이후 매번 유력한 신인으로 지목되곤 했으나 이후 6년간 우승컵을 만져보지 못했다. 매년 최고의 신인에게 주어지는 신인왕 자리도 차지한 적이 없다. 전투력은 발군인데 흐름이 자연스럽지 않고 어딘지 위태위태한 게 문제였다. 하지만 올 들어 김지석이 달라졌다.

“침착한 자세를 유지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마음가짐이 실력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점을 절실히 느꼈어요”라고 그는 수줍게 말한다. 여자처럼 선이 고운 용모와 달리 바둑은 이세돌 9단보다 더 사납다는 평을 들어온 김지석이 드디어 ‘마음’의 문제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김지석이 말하는 자신의 특징은 “전투가 벌어지거나 복잡해지면 잘 두지만 단조로운 바둑이 되면 어디다 둬야 할지 막막하다”는 것. 치명적인 약점은 “계가나 끝내기에서 나보다 약한 젊은 기사를 본 적이 없다”는 것.

그러나 바둑은 끝내기나 계산 같은 답답한 분야를 등한시해서는 이길 수 없다. 단조로움도 견뎌내야 한다. 김지석의 상승세는 바로 그 점, 즉 바둑이 때론 재미없고 지루한 승부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올해는 이정표를 하나 세워야 하지 않겠느냐고 묻자 “결실도 중요하지만 실력이 있으면 결국 되는 것 아니겠느냐”고 대답한다. 대단한 자신감이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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