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속도전 ② 현장 속 정부 출연 연구소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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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양광호(左) 책임연구원이 서울 서초동 민트패스 사무실에서 이 회사 신순철(右) 부사장에게 개발 중인 차세대 단말기에 관해 조언하고 있다. [안성식 기자]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양광호(48) 디지털콘텐츠연구본부 책임연구원(박사)은 10일 오전 6시15분에 충남 계룡역에서 서울 용산행 무궁화호에 올랐다. 4월 10일 시작된 양 박사의 일상이다. ETRI는 대덕연구단지에 있지만 그는 매일 서울로 출근하고 있다. ETRI가 올해부터 마련한 중소기업 현장 지원 인력 파견 제도에 따라 6개월간 서울 서초동의 벤처기업으로 출근하는 중이다. 이날 오전 8시40분 용산역에 도착한 양 박사는 지하철을 이용해 강남역에 내린 뒤 걸어서 뱅뱅사거리 사무실로 향했다. 출근에 두 시간 이상 걸리지만 피곤한 기색이 없었다.

“매일 연구실에만 있다가 실제로 기술이 제품으로 이어지는 현장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그가 6개월간 파견근무를 하게 된 새로운 일터는 게임단말기 개발 업체인 민트패스다. MP3 플레이어로 유명한 레인콤의 양덕준 사장이 벤처신화를 재창조한다는 일념으로 지난해 창업한 회사다. 현재 33명이 근무 중인 이 회사는 민트패드라는 개인휴대용단말기(PDA)를 생산한다.

양 박사는 이곳에서 게임단말기의 중장기 로드맵을 수립하고 차세대 단말기인 사파이어 개발을 돕고 있다. 이 회사의 신순철 부사장은 “정부 산하 연구기관에 있는 양 박사와 같은 필수 전문가에게 민간기업이 매일 조언을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은 엄청난 특권”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업의 연구개발(R&D) 현장은 속도가 승부를 좌우할 만큼 치열한 곳”이라며 “게임 엔진 분야에서 권위자인 양 박사의 조언으로 차세대 단말기 개발 기간이 단축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양 박사가 합류하면서 차세대 단말기로 개발 중인 사파이어의 개념이 빠르게 형성되고 있다. 휴대전화 크기의 단말기가 기존 PC 4대의 성능을 발휘하면서, ‘손 안의 수퍼컴’ 기능을 구현한다. 온라인 게임은 물론 3차원 가상세계까지 작동할 수 있다. 게다가 소비전력은 기존 단말기의 3분의1 수준이어서 구동시간을 크게 늘릴 수 있다. 양 박사는 “올 하반기나 내년 상반기에는 실제 제품을 만나볼 수 있다”며 “우선은 문제은행을 저장하고 동영상 강의도 들을 수 있는 전자교과서용으로 쓰이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양 박사의 경우처럼 ETRI와 한국생산기술연구원 등 13개 정부출연연구원은 R&D속도전을 선언하고 민간기업의 기술 개발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이들 연구원은 총 3600여 명의 박사급 연구인력과 2700여 종의 첨단 연구장비를 투입해 주로 중소기업 생산현장에서 발생하는 긴급한 애로기술 해결에 나서고 있다. 지식경제부는 10일 이 같은 내용을 종합해 ‘R&D속도전 대국민 보고대회’를 열었다. R&D속도전에 총 3800여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인천 송도에 위치한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사이버설계지원센터의 유승목(45) 박사는 1주일의 절반 이상을 지방에서 보낸다. 금속주물과 관련해 기술적으로 문제가 발생한 중소기업을 찾아다니며 해결해주는 게 그의 일이다. 금속 제품이나 부품 제작에 문제가 생기면 컴퓨터 해석 기술을 도입해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대안을 마련해 준다.

그와 함께 근무하는 12명의 박사들은 중소기업 현장에서 ‘드림팀’으로 통한다. 2004년 인천 경서단지 내 광희주물제작소의 불량률을 크게 개선하면서 입소문이 퍼졌다. 이 업체가 기술지원을 받기 전 대형선박엔진에 들어가는 실린더라이너의 불량률은 14%까지 올라갔다. 무게가 최대 12t까지 나가는 것이어서 불량품을 회수해 교체해주는 데만 수천만원이 들었다고 한다. 유 박사는 2005년 컴퓨터 해석 기술을 이용해 최적의 주조방안을 마련해줬다. 불량률은 0.6%까지 낮아졌고, 연간 25억원의 비용이 절감됐다. 지난해에는 경남 창원의 대신금속이 KTX2에 들어가는 부품을 국산화하는 데 일조했다. 한 세트에 2억원 하는 부품을 동일한 품질에 가격을 3분의1로 낮추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 같은 일들은 모두 생산기술연구원이 벌이는 R&D속도전과 관련이 있다.

유 박사는 “산업적으로 중요한 기술을 개발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중소기업이 필요로 하는 기술을 알아내 신속하게 대응한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심재우 기자 , 사진=안성식 기자

R&D 속도전 ① 연구개발 속도전’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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