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났던 이경재 신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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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가장 보잘것없는 자들을 우선적으로 돌보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하루같이 온몸을 던져 실천하던 가톨릭 사제 이경재신부 (72) 의 유해가 13일 하느님 나라로 갔다.

"나환자들이 제일 먼저 갈구하는 것은 몸을 낫게 해주는 약입니다. 환부가 좀 치료되면 다음으로는 음식과 옷, 편안한 잠자리를 원하지요. 세번째로는 돈을 갖고 싶어해요. 이런 것들이 어느 정도 충족되면 마지막으로 갈망하는게 형제자매.부부의 '정 (情)' 입니다. 앞의 세가지는 물질적 지원만 있으면 해결됩니다. 그러나 네번째 문제는 돈으론 풀 수 없는 사랑과 인정의 문제로 나환자 사목의 가장 어려운 점입니다."

'한국의 다미얀' 으로 불린 李신부가 생전에 어느날 기자와 점심식사를 하다가 들려준 나환자 사목 이야기였다. 그는 자신과 수사.수녀들이 최선을 다해 형제자매의 역할을 하지만 아내와 남편간의 정만은 도저히 충족시켜 주기가 어렵다고 덧붙였다.

그는 하와이 몰로카이 섬에서 일생동안 나환자들을 돌보다 자신도 급기야 감염돼 선종한 로마 가톨릭 나환자 사목의 표상인 다미얀신부 (1840 - 1889.벨기에) 의 '한국판' 이었다.

李신부는 28년동안 경기도 의왕시 성라자로마을에서 사제생활의 대부분을 보내면서 50여만명의 나환자들을 돌보았다. 성라자로마을이 현재 국내 4만5천여명, 해외 3천5백여명의 후원회원을 가진 세계적 나환자수용시설이 된 것은 전적으로 그의 헌신 때문이었다.

국내 후원자들 가운데는 한때 서울 무교동 술집 월드컵의 호스티스들이 전원 가입, 월5천원씩의 회비를 보내기도 했다.

그는 타종교는 물론 상하를 가리지 않고 후원자들을 모아 원불교 서울 강남교당의 박청수교무, 유수한 대기업 총수들도 성라자로마을의 열렬한 후원자가 됐다.

성라자로마을 나환자들의 공동생일날에는 매년 어느 기업총수 부인이 보내주는 빳빳한 5천원짜리를 각각 두세장씩 나누어주어 돈을 갖고 싶어하는 환자들을 즐겁게 해주기도 했다.

60년대까지만 해도 나병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천벌 (天罰)' 이라며 소외시키던 보잘것없는 나환자들을 지극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돌본 李신부가 보여준 '종교의 인간화' , '성령의 육화 (肉化)' 는 길이 기억될 만한 것이다.

그는 자신을 사제의 길로 인도한 황해도 고향 대선배인 고 (故) 노기남대주교 (1902 - 1984) 를 친아버지처럼 모시는 효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기자는 盧대주교가 은퇴한 후 말년을 성라자로마을에서 보낼 때인 80년 가을 들렀다 평소 즐기던 개고기 대신 개소주를 李신부가 계속해다 준다며 자랑하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라는 말이 더 이상 철학적.신학적 용어가 아님을 증명해주고 간 李신부가 안성 미리내묘지에서 이 세속의 시간표와는 다른 시간표를 따라 잠시 쉬다가 생전의 동안 (童顔) 모습 그대로 부활해 오기를 고대하는 마음 간절하다.

이은윤 종교전문위원

〈lee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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