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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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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김광섭 시인은 ‘저녁에’라는 시에서 별을 이렇게 그렸다.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 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이렇게 정다운 별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유심초’라는 듀엣 가수가 노래로 불러 귀에 익숙한 이 시에서 별은 영원한 그리움이다. 헤어진 옛 애인일 수도 있겠고, 저세상으로 멀리 떠난 육친일 수도 있다.

사람이 별을 노래하는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인체의 화학적 구성은 오히려 별을 닮았기 때문이다. 사람 몸은 수소와 산소·탄소·질소·인의 순서대로 채워져 있다. 헬륨을 제외한다면 태양과 같은 구성이다.

지구는 이에 비해 산소와 철·규소·마그네슘·황의 순서다. 사람이란 생명체가 태양과 같은 항성, 즉 별에서 비롯했을 것이라고 보는 유력한 증거다. 사람이 지상에서 영원히 떠난 이에 대한 그리움을 별로 이야기하고, 내가 되돌아가 그와 다시 만날 자리를 별에서 찾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세상 사람끼리의 길고 긴 헤어짐 속 슬픔과 아쉬움을 천체에서 멀리 빛나는 별로 승화한 작품이 김광섭의 시다. 인간의 고독이 한 차원 너머의 것으로 옮겨 가 또 하나의 별처럼 빛난다.

헤어짐으로 생겨나는 슬픔은 이렇게 승화가 필요하다. 유교에서도 상을 마치는 졸곡(卒哭)이 끝나면 그 이후의 모든 제사는 좋은 일, 길사(吉事)로 간주한다. 불교에서도 상을 마친 뒤 지내는 49재 기간 동안에는 슬픔을 앞세우지 못한다. 애도(哀悼)가 지나치면 망자의 혼은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이승을 떠돈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때에는 떠난 이에 대한 축원이 슬픔을 대신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를 따지자면 요즘 유교 예법으로는 벌써 졸곡이 지났고, 불교식으로는 49재가 시작된 지 한참 지난 시점이다. 그런데도 조문정국이 이어진다.

검은 상복 차림에 검은 플래카드를 걸고 조문정국을 주도하는 민주당을 다시 본다. 망자에 대한 배려가 우선 보이질 않는다. 대신 이를 기화로 정국을 이끌겠다며 광장으로 나섰다.

망자에 대한 예법조차 따지지 못하면서 의회민주주의라는 제도를 부정하고 거리에 나선 국회의원들이다. 애당초 이들에게 승화시킬 슬픔이란 없었을지 모른다. 그러니 별을 바라볼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말하자면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이다.

유광종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