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달라도]불교·천주교·원불교 모임'三笑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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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스님이 약속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오시다니…. 약속 시간에 늦는 게 불교 '전통' 인 줄 알았는데…" "아니, 내가 언제 그랬던가? (웃음)" 불교 조계종의 보명스님 (45) 과 원불교 일산교당의 김성혜교무 (42) , 천주교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 수녀회의 최데레사수녀 (40) .종교는 서로 달라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농담이 곧잘 오간다.

이들은 지난달 26일 연등행사에서 함께 합창을 들려줌으로써 잔잔한 감동을 안겨줬던 삼소회 (三笑會) 의 '심부름꾼' 들. 그날 행사 이후로 7일 처음 자리를 함께 한 이들한테는 종교의 벽 따위를 묻기가 오히려 쑥스러울 정도다. 마음결이 그렇게 고와 보일 수가 없다.

그래도 "약간의 갈등은 있지 않았을까요" 라고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이에 대해 세 사람 모두 "서로의 종교를 인정하고, 교리도 받아들이고, 배우는 자세를 버리지 않고…. 똑같은 수도생활이잖아요. 종교는 넘어선 거지요" 라고 거든다.

최근 종교계에 일고 있는 화합도 어찌 보면 지난 88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삼소회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울올림픽에 이어서 열린 장애자올림픽이 이들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온 국토를 달구듯 뜨겁던 국민들의 열기가 장애자올림픽에서는 그만 꽁꽁 얼어붙었던 것이다. 그때까지는 이름도 없이 남자 교무와 스님도 끼었던 순수 친목모임이었다.

그 후로 장애자들을 위한 모임에서 합창도 들려주고 틈틈이 시화전을 열어 여기서 얻어지는 수익금을 장애인을 위한 기금으로 내놓았다. 이제는 그 힘이 커져 화합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삼소회의 '삼소' 는 '호계삼소 (虎溪三笑)' 라는 고사성어에서 따온 것. 중국의 고승 혜원 (慧遠) 이 유학자 도연명 (陶淵明) 과 도교의 대가 육수정 (陸修靜) 을 배웅하는 길에 정담에 취한 나머지 30년동안 스스로 건너지 말자고 정했던 호계라는 계곡을 넘어버린 사실을 깨닫고는 3명 모두 호탕하게 웃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도반 (道伴) 으로 하나될 때는 추구하는 진리도 하나되는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여기서 또 세 사람이 입을 모은다. "우리 셋이 걸어가면 그림이 좋다고 그래요. 화합을 외치지 않아도 찡함을 느낀다고 해요. 눈시울이 뜨거워진다는 사람도 있고요. "

실제로 지난 96년 원불교 주최로 비무장지대에서 열렸던 국제자유종교연맹 (IARF) 세계대회에서 삼소회 회원들이 노래를 부를 때 각국 종교지도자들은 가사는 알아듣지 못하면서도 그 '그림' 만으로 깊은 감동을 받아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통일을 바라는 마음, 하나되는 마음이 참석자들에게 전율로 가 닿았던 것이다. 보명스님.김성혜교무.최데레사수녀도 그때의 감동을 결코 잊지 못한다.

이제 삼소회 회원들은 남북 통일의 물꼬를 트는데 큰 역할을 맡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안고 그 길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정명진 기자

〈m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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