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 배꼽 쥐게 한 중국계 공학박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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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미국에 사는 중국계 이민자가 현지 방송에 출연해 전통 예능인 상성(相聲:만담)을 영어로 연기하면서 하루 아침에 유명인사가 됐다.

8일 베이징청년보(北京靑年報)에 따르면 주인공은 미국 보스턴의 제약회사에 근무하는 황시(黃西·39·사진). 화학공학 박사인 그는 최근 데이비드 레터먼이 진행하는 CBS 방송의 ‘레이트 쇼’에 출연했다. 그는 중국인들 사이에 인기가 높은 민간 공연오락 장르인 상성을 영어로 연기했다. 두 사람이 하는 상성을 황은 이날 혼자서 해냈다. 신문은 “수백만 명의 미국인 시청자들이 황의 상성을 듣고 배꼽을 잡고 웃었다”라고 전했다. 그의 공연 장면을 담은 동영상은 유튜브닷컴(youtube.com)에도 올라 이미 36만 클릭을 넘어섰다.

황은 원래 전문 상성 배우 출신이 아니다. 그는 중국 동북지방의 지린(吉林)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한 뒤 미국 유학을 떠나 텍사스주 라이스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뒤 미국에 정착했고 제약사 연구원 일자리도 얻었다. 아이도 낳았고 집도 샀다. 그는 상성 공연을 하게 된 동기에 대해 “중국인들이 꿈꾸는 ‘아메리칸 드림’을 이뤘지만 인생에 뭔가 빠진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황은 “중국에 있을 때부터 우스갯소리 하는 것을 즐겼다”며 “미국에 이민와서 보니 주변에 웃기는 일이 많아 상성으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7년 전 친구를 통해 우연히 보스턴 시내의 상성을 전문으로 공연하는 클럽을 소개받았다. 그는 낮에는 직장인으로 일하고 퇴근한 뒤 오후 8시부터는 이 클럽에서 상성을 공연했다. 그의 목적은 돈벌이가 아니었다.

2005년 이 클럽을 찾은 CBS ‘레이트 쇼’ 관계자가 그를 눈여겨봤고 최근 방송 출연을 요청했다. 보스턴에서 상성을 공연한 지 7년 만에 마침내 방송 출연 기회를 잡은 것이다. 주어진 5분 동안 축적된 솜씨를 신들린 듯 보여줬고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날 공연에서 미국의 이민 제도를 풍자하기도 한 황은 “상성을 통해 아시아계 이민에 대한 미국인의 시각을 바꾸고 싶었다”고 말했다.

베이징=장세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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