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리뷰]'꿈과 사랑:매혹의 우리 민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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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열리고 있는 '꿈과 사랑 : 매혹의 우리 민화' (호암갤러리, 6월30일까지)에 가득 걸린 민화는 모처럼 서울나들이 나온 농사짓는 시골 노장 (老丈) 을 닮았다.

그의 서울 거동은 얼핏 촌스럽게 보일지언정 자연 속에서 터득한 비범한 지혜는 잘났다는 서울사람의 뽐냄이 오히려 무색하다. 언젠가 텔레비전의 탐방 프로인데 시골 노인을 붙들고 "할아버지, 얼마나 오래 살고 싶으세요?" 하고 판에 박은 물음을 던지자 "천명대로 살다 죽을 뿐 과욕은 있을 수 없다" 고 못박는데, 우리 민화를 보면 나는 항상 그런 시골노인이 생각난다. 안분자족 (安分自足) 하는 시골 노장처럼 민화장 (匠) 들은 물감이 풍족하면 풍족한 대로, 먹 밖에 가진게 없으면 묵선만으로 그렸다.

화려한 채색으로 세밀 (細密).정치 (精緻) 하게 그리면서도 북종화 (北宗畵) 를 닮은 줄 몰랐고, 수묵으로 담담하게 그리면서도 남종화 (南宗畵) 를 닮은 줄 몰랐다. 배운 재주가 '환치는' 짓이라 밥술이나 먹는 사람이 집을 치장한다 하면 청에 따라 그림을 그리는데, 붓이 가는 손길 따라 점입가경 하는 신명은 민화장의 희열이고 보람이었다.

그림의 기원설로 따져 민화의 생성은 청하는 사람 쪽에서 보면 부적 (符籍) 설이 옳고, 민화장의 그리는 손맛으로 치면 스스로 희열 삼매경인 유희 (遊戱) 설이 틀림없다.

민화라 하면 언제나 '이름없는' 환쟁이가 그렸다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환쟁이일지라도 어찌 이름이 없겠는가. 그 시대가 그들의 이름을 알려고 하지 않았을 따름이다.

우리가 민화의 가치를 모르고 있었던 사이에 일제 때 이 땅을 사랑했던 일본인 야나기 (柳宗悅) 같은 안목을 통해 수집되기 시작했고, 지금도 민화의 전모를 살피자면 일본 출판사 (講談社) 책을 자주 손에 잡는다. 하지만 만각 (晩覺) 은 몰각 (沒覺) 보다 천 번 만 번 낫다.

일본이 세계에 자랑하는 목판화 우끼요에 (浮世繪) 도 프랑스 사람들이 먼저 알아본 것. 예술계에서 남의 눈을 빌려 자기를 안다는 것은 그리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 민화를 알아본 것은 6.25가 끝나고 전후복구기에 들었을 즈음. 뒤늦게나마 민화의 가치를 재발견한 김철순 (金哲淳) , 조자용 (趙子庸) 은 안목은 우리 문화 현대사에서 기억되어 마땅한 쾌거가 아닐 수 없고, 이번 전시 역시 후자의 수집이 근간을 이룬다 들었다.

이번 기획전에서는 민화의 장르 분류를 새로 시도한 점을 앞세우고 있다. 아직도 민화의 정체는 미답의 경지로 남아있기에 바람직한 시도임은 분명하다. 한데 "아는 것이 좋아하는 것만 못하다" (知之者 不如好之者) 는 성현의 말씀이 있지 않은가.

국립박물관 소장은 가진게 없다고 말하는 것이 정직할 정도로 미약하고 개인소장은 어디 있는지 모를 정도로 산질 (散秩) 되어 있는 민화를 이렇게 한 자리에 모아 애호가들의 갈증을 풀어준 것에 나는 오히려 더 뜻을 사고 싶다.

이 전시를 계기로 애호가들이 상시 안복 (眼福) 을 누릴 수 있도록 누가 나서서 민화를 상설 전시하는 장치를 마련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기대만 간절할 따름이다.

어찌 민화사랑이 애호가들만의 몫이겠는가.

알게 모르게 민화의 유희정신은 동양화 쪽에선 김기창 (金基昶) , 서양화 쪽에선 장욱진 (張旭鎭) 같은 현대의 대가들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더라도 화학도 (畵學徒) 들의 그림공부에 이만한 '국산' 교과서는 없을 것이다.

김형국〈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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