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스타일리스트]다큐사진작가 이정률씨…장애인 담기 1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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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늘 우리 곁에 존재하지만 무관심, 그도 아니면 동정의 대상일 뿐. 누구 하나 찾는 이 없는 이웃이 있다. 장애인이 바로 그들이다. 이정률 (31) 씨는 남들이 외면하는 장애인들을 몸소 찾아다니는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다.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3~4개월에 한 번씩 닳아버린 신발을 바꿔가며 장애인 사진을 찍기 위해 방방곡곡을 찾아 다녔다. 소록도에 이르기까지…. 이쯤이면 '미친 사람' 이란 말을 듣는 것도 당연할 게다. 도대체 무슨 사연으로 그 일을 업 (業) 으로 삼은 걸까.

"대학 (단국대 과학교육과) 입학 후 얼떨결에 친구 따라 장애인 봉사동아리 '키비탄' 에 가입했다. 봉사를 위해 찾은 수용시설에서 본 장애인들의 모습은 한마디로 충격이었다. 어떻게 하면 그들을 도울 수 있을까. 결국 사진을 통해 장애인들의 모습을 보여주자는 생각에 이르렀다. "

사진은 고등학교 때 독학으로 시작했다. 다큐사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술' 이 아닌 피사체와의 '교감' 이라는 게 이씨의 말이다. 그래서 사진을 찍는 일 10%, 나머지 90%는 장애인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는 것. 마음을 열기 위한 그 90%가 훨씬 힘든 것임은 짐작대로다.

93년 첫 개인전 '이 땅의 장애인' 을 시작으로 이제까지 빈민장애인, 시설장애인 등을 주제로 3번의 개인전과 2번의 그룹전을 열었다. 지금도 그의 작품들은 전국 순회전시중. 지난주부터는 유니텔 장애인사이트 '함께하는 세상' (go together)에 온라인 전시도 하고 있다.

그러나 돈을 받은 적은 한 번도 없다. 모든 비용은 틈틈이 웨딩사진이나 상업사진을 찍어 마련한다. 이제까지 그의 작품을 본 사람은 대략 1백50만명. 매번 훌륭한 일을 한다는 칭찬을 듣지만 그에 못지 않게 "왜 돈되는 사진을 안 찍고 이런 사진을 찍느냐" 는 얘기에도 익숙하다.

같은 질문에 답하기 싫어서, 그리고 10년간의 작업을 결산한다는 뜻에서 지난해 12월 그간 찍은 사진과 직접 쓴 글로 엮은 에세이집 '바다가 보고싶은 사람들' (달과 꿈 刊) 을 펴 냈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책이 출간되자마자 재산목록 1호이던 카메라를 도난당했다. 지금은 하루 3만원을 주고 충무로에서 카메라를 빌려서 사진을 찍는 형편이다.

여전히 장애인들을 찾아서. " '이 일을 평생 해야겠다' 는 거창한 사명감을 가지고 시작한 건 아닙니다. 전시회를 열 때마다 '이번이 마지막' 이라고 되뇌기도 했구요. 그런데 지금까지 오게됐군요. " 때로는 너무나 안타까운 사연의 장애인을 찍고도 다시 더 기막힌 사람을 찍으러 나서야 하는 자신의 처지가 답답하기도 하다.

장애인 문제에 대해 알아갈수록 생겨나는 문제의식들도 꼬리에 꼬리를 물며 그를 괴롭힌다. 그러나 그의 사진으로 희망과 용기를 얻는 이들, 장애인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이들이 있기에 그는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미친 짓' 을 계속할 거다.

글 = 김현정·사진 = 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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