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핸디 지음, 강혜정 옮김, 21세기북스
372쪽, 1만5000원
현장과 이론, 두루 경험을 쌓은 경제사상가가 쓴 책인데도 제목이 눈에 띄게 감상적이다. 미국의 한 야외 조각정원에서 안에 사람은 없이 텅 빈 상태로 세워진 레인코트(주디스 셰어의 ‘무언(사진)’이라는 작품)를 보고 그는 ‘현대인’을 생각했다고 한다. 임금 대장에 올라 있는 숫자, 직책, 경제학·사회학의 소재, 어느 보고서의 통계수치로 존재하는, 거대한 기계의 작은 톱니바퀴 같은 우리들. 그는 효율이 수단이 아니라 목표가 되고, 불평등이 심화되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자본주의의 불균형을 생산성·지적능력·나이·부·정의·개인 등 ‘아홉 가지 역설’로 분석하고 허전함을 메울 처방을 모색했다.
돈이 있는 사람들은 시간이 없는 반면, 일자리가 없어 빈둥거릴 ‘특권’을 누리는 이들은 허다한 현실(일의 역설)은 누가 부정하랴. 누군가는 주체할 수 없이 시간이 남아서 걱정이고, 반면에 누군가는 늘 시간에 쫓기고(시간의 역설), 조직은 노동자에게 더욱 자율적이면서 동시에 소속감을 가질 것을 요구하고, 관리자에게는 많은 책임을 위임하는 동시에 통제력을 요구한다(조직의 역설)….
저자는 “역설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더불어 살아가는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개인 혹은 기업이 현재의 상태가 지속될 수 없다는 가정 하에 2~3년 뒤에 꾀할 변화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거나(‘시그모이드 곡선’), 핵심적인 의무와 가능성 사이의 균형을 찾는 것(‘도넛 사고’)이 역설을 관통하기 위한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책은 1994년에 출간됐다. 이미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의 내용을 담은 책들이 다수 소개돼 늦은 감이 있지만, 저자의 주장까지 빛바래지는 않았다.
이은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