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다면 한다.정해진 코스대로 살란 법은 없다.고정관념에 질질 끌려 다니다보면 남는 것은 후회 뿐. 늦었다고 생각할 때는 진짜 늦은 거다.지난해 6월 RPG (롤플레잉 게임) 관련서적 전문출판사 '초여명' (02 - 417 - 1596) 을 차린 김성일.박나림 부부를 소개하자. 74년생 동갑내기인 이들은 김씨가 법학과, 박씨가 금속공학과 3학년때 서울대 RPG연구회에서 활동을 하다 가까워져 결혼했다.김씨도 고시준비에 파묻혀 있던 '여느 법대생' 과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합격을 한다 해도 "사회에 나갈 준비를 하는 데만 나이 서른이 넘어버리는 게 너무 억울하다" 는 생각이 슬그머니 들었다.상당부분 '의무감' 에서 시작한 사법고시 준비가 점점 재미없어졌고 급기야는 아예 휴학을 해버렸다.
전공과 관계 없자면 과학고를 나와 금속공학과를 지난해 졸업한 박씨도 못지 않다.평소 게임에 푹 빠지다 보니 "이런 책좀 있으면 좋을 텐데…" 하던 것에 "내 회사를 갖고 싶다" 는 소망이 보태지면서 "그렇다면 우리라고 못하란 법이 없지 않느냐" 로 결론을 내고 일을 저질렀다.
둘이 합쳐 2천만원 가량 투자하느라 신혼여행도 기꺼이 포기했을 정도. 첫 상품은 미국 스티브잭슨사 (社)에서 나온 'GURPS (게임 시스템의 하나)' 의 한글판. 김씨가 직접 번역했다.지난달에 출간돼 현재 1천부 정도 나갔다.
연이은 도매상 부도로 유통망이 불확실해져 대형서점에서만 구할 수 있다."게임에 한번 빠지기 시작하면 관련자료에 목마름을 느껴요. " 3만여 명으로 추산되는 RPG인구에겐 가뭄 뒤 단비같은 존재가 될 듯하다.
"RPG라는 놀이문화를 알려 좀더 많은 사람과 공유하는 것, 그리고 매니어들에게 끊임없이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아직 걸음마 단계라 번역서 위주로 내지만 궁극적으로 저희가 하고 싶은 건 초보자를 위한 입문서를 만들고 외국 회사들처럼 게임시스템을 직접 연구해 만드는 거예요. " 이 스물네살 젊은이들의 꿈은 '좋아하는 것' 에서 출발했기에 즐겁고 창조적이다.
기선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