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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약탈서 유래한 ‘반달리즘’ 반달족 입장에선 억울한 누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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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서기 455년 6월 2일, 북아프리카에 독립왕국을 건설한 게르만족 일파 반달족(Vandals)이 지중해를 건너 로마를 약탈했다. ‘고의 또는 무지에 의해 예술품이나 공공시설을 훼손하거나 약탈하는 행위’란 뜻의 영어 ‘반달리즘(Vandalism)’은 이렇게 해서 생겼다. 2001년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군사정권이 이슬람 문화에 반한다는 이유로 세계적 문화유산인 ‘바미얀 석불’(사진·파괴되기 전 모습)을 로켓포로 산산조각 낸 행위, 2008년 2월의 숭례문 방화 사건이 반달리즘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반달족은 원래 스칸디나비아에서 살다가 독일·프랑스·스페인을 거친 뒤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북아프리카에 정착했다. 반달리즘이란 말은 프랑스 주교 앙리 그레과르(1750~1831)가 프랑스혁명 당시 자코뱅당이 자행한 파괴활동을 반달족이 저질렀다고 전해진 범죄행위와 비교하면서 처음으로 사용됐다. 그러나 반달리즘이라는 말 자체가 반달리즘을 내포하고 있다. 5세기의 반달족은 이미 로마 문화를 받아들여 로마 문화의 우수성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북아프리카에서 자기 언어를 포기하고 라틴어를 채택했는가 하면 문학·신학에도 관심을 보였다. 그런 까닭에 파괴행위는 극히 일부였다.

오히려 로마의 문화와 예술은 로마제국 말기의 노예나 빈곤층, 그리고 후대의 예술가와 로마의 보통 사람이 더 많이 파괴했다. 예컨대 르네상스 시대에 고대 그리스 양식을 흉내 내려고 할 경우 가장 쉬운 방법은 로마시에 있던 오래된 건축물에서 기둥 등을 가져다가 약간 손을 보면 되었다. 다시 말해 ‘새로운 로마’를 만들기 위해 ‘옛 로마’를 파괴한 이는 로마인 자신이었다. 물론 미켈란젤로 같은 일부 예술가들이 그러한 행위를 비난하기도 했지만 대개 무시를 당하기 일쑤였다.

533년 동로마제국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휘하 장군 벨리사리우스가 북아프리카에 상륙해 두 주일 만에 수도 카르타고를 함락했고, 1년이 못 되어 반달족의 흔적을 깡그리 없애버렸다. 수많은 반달족 구성원은 동로마제국 군대의 일원으로 편입됐다. 이로써 거대한 인종 도가니가 될 동로마제국에 한 종족이 추가됐다. 반달족은 억울하게도 실제와 다른 나쁜 평판만을 후대에 남긴 채 역사에서 사라졌다. ‘역사 도시’ 서울이 무분별한 개발과 팽창으로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개발의 미명 아래 또 다른 문화파괴가 자행되는 것이나 아닌지 경계해야 할 때다.

박상익(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서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