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글로벌 아이

일본판 북풍의 한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42면

북한이 두 번째 핵실험을 강행한 지난달 25일 일본 총리관저. “국제사회가 북한의 핵실험을 저지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을 받은 아소 다로(麻生太郞) 일본 총리의 답변이다. 이 ‘한계’라는 발언이 도마에 올랐다. TV 시사 토크쇼 출연진은 “총리 입에서 나올 소리냐”고 입을 모았고, 야당 당수는 “일본은 북한 문제에서 소외돼 있다”고 비난했다.

같은 날 외무성의 야부나카 미토지(藪中三十二) 사무차관도 “일본 외교가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다”는 질문에 대해 “이 문제는 일본뿐 아니라 국제사회 전체가 대응해 온 과제”라고 강조하는 데 그쳤다. 이들의 발언을 종합해 보면 일본 당국이 정말 하고 싶은 말은 “북한의 최대 지원국인 중국이 제재에 신중한 입장이니까…” “미국이 조지 W 부시 행정부 말기에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했기 때문에…” 같은 말이 아니었을까.

북한의 도발이 핵실험 이후 줄을 잇고 있다.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도 발사할 태세다. 일본은 스스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직접적으로 받는 유일한 나라라고 생각한다. 북한의 위협이 현실적으로 미국 본토 공격까지 상정하지 않고 있고, 미사일이 아니어도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상시 북한의 위협을 받고 있는 한국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일본이 지난 4월 북한의 위성 발사 때 미사일이 일본 영역 내에 떨어질 것에 대비해 패트리엇(PAC3)과 함상요격미사일(SM3)을 탑재한 이지스함을 동해에 배치한 것도 이런 명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이 대북 제재 갱신 기한을 6개월에서 1년으로 늘리는 등 대북 제재를 강화했음은 물론이다. 이번에도 정치권에서는 대북 전면 금수(禁輸)조치 등 보다 강경한 제재조치를 주문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전시체제를 방불케 했던 4월과는 달리 이번엔 차분한 모습이다. 일본이 아무리 호들갑을 떨어도 중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함께 나서지 않는 한 일본의 독자적인 제재는 ‘국내용’에 불과하다는 여론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일본 내에서 현실적인 대응을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도 고개를 들고 있다. 한·미·일이 중국의 도움을 얻어 강력한 제재를 가할 수 없다면 북·미 관계 정상화라는 당근을 주고 핵 개발을 포기시키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전 총리는 27일 “일본의 대북정책은 한번 더 생각해 보는 것이 좋다”며 일본 독자적인 대북 제재의 한계를 지적했다. 야나이 슌지(柳井俊二) 전 주미 일본대사는 최근 기고문을 통해 “국제사회가 북한 핵 보유를 인정하지는 않겠지만, 이제 일본은 사실상 핵을 가진 한반도 정책을 심각하게 생각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아베 정권 이래 계속된 대북 강경정책이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여론이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아소 정권 지지율에 큰 변동이 없는 것을 감안하면 일본판 ‘북풍’도 유효기간이 지난 셈이다. 북한 문제는 총선을 목전에 둔 아소 총리의 외교력을 가늠할 시험무대다.

박소영 도쿄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