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니어가 아니더라도 '레드 헌트' 라는 영화는 들어보셨을 겁니다.이 영화 때문에 지난해 인권영화제가 난장판이 됐고, 경찰과 학생들의 해묵은 대립과 인권운동가 서준식씨의 구속을 빚었으니까요. 어떤 영화기에 그 난리법석을 피웠던 걸까요. 이 영화는 48년 제주도에서 벌어진 '4.3사건' 을 당시 주민과 역사학자들의 입을 빌어 설명하는 다큐멘터리 작품입니다.
4월3일 주민의 폭동으로 시작된 이 사건은 2만명 가까운 사망자를 낳은 채 아직도 역사의 뒤편에 묻혀 있습니다.이 사건에는 해방 후 좌.우익의 갈등과 미군정의 실정 (失政)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영화는 이 과정에서 발생한 억울한 죽음에 초점을 맞춥니다.
이 영화는 우선 이적성이 문제가 됐습니다."내용 전반이 북한의 주장과 비슷하다" 는 얘기죠. 그런데 이미 많은 역사학자들이 비슷한 주장을 해왔으며 심지어 제주도의 일간신문도 특집을 다루고 있는데 유독 '레드 헌트' 에만 시비를 건 점은 이상합니다.
또 하나의 쟁점은 이 영화가 심의를 받지 않고 상영된 점입니다.그런데 인권영화제보다 1개월여 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적이 있다는군요. 또 심의 없이 소규모 공간에서 상영되는 영화가 얼마나 많은지는 잘 아실 겁니다.
커다란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는 독립단편영화를 놓고도 이런 해프닝이 벌어지는 것은 우리 사회의 성숙성을 믿지 못하는 일부 '엘리트' 들의 독선적 발상 때문 아닐까요. 곧 열릴 국회에서 국민의 '건전한 판단력' 을 믿는 방향으로 제도가 개정되기를 바라는 건 한두 명이 아닐 겁니다.
문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