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고조선에 빠졌나…]언론인 이규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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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우리 역사의 전체상을 그린다면 어떻게 될까.한마디로 말해 머리부문이 심각하게 훼손된 만신창이의 모습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내가 이런 모습을 어림하게 된 것은 우리의 정체성 곧 '내가 누구인가' 를 알기 위한 오랜 숙제를 푸는 과정에서였다.

일찍이 육당 최남선도 말했지만 우리의 역사, 우리의 인문적인 모든 것이 단군 (檀君)에서 비롯되었거늘 그것이 제 위치와 제 위상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어찌된 일이며, 그것이 뜻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지난날의 이른바 '식민사관' 이나 '타율성 (他律性) 사관' 의 탓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아무튼 그것은 우리의 역사책이 첫단추부터 잘못 끼어졌음을 뜻하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사실 단군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것은 우리의 뿌리와 우리의 문화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우리 것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이 남의 것인들 제대로 알 수 있겠는가.

내가 단군을 중심으로 한 우리 나라 역사를 연구하면서 받은 충격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첫째는 사료가 희소할 뿐 더러 있는 사료조차도 훼손되고 있음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둘째는 관련학계에서 이른바 정설로 다루고 있는 것들이 대부분 일제가 펴낸 이른바 '조선사' 의 테두리를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었다.거기에 더하여 새로 발굴된 사료에 대해서는 그것이 민간이나 재야사학자 (在野史學者)에 의한 것일 땐 백안시하기 일수였다.

그러나 사안 (史眼) 만 바로 선다면 새로운 사료나 고적 또는 유물의 발굴을 바르게 평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나의 기본적인 생각이다.이번에 공개된 '고조선시대 미송리형토기' 만 하더라도 그것이 지니는 역사적 가치는 엄청난 것이 아닌가 싶다.

내가 그동안 단군관련 자료 내지 사료를 수집한 경험에 비추어 말한다면 아직도 많은 사료와 유물들이 국내외에 산재해 있을 것으로 믿어마지 않는다.나는 상해임시정부가 펴낸 역사교과서인 '배달족역사 (培達族歷史.사진)' 와 해방직후 성재 (省齋) 이시영선생이 감수하여 펴낸 '조선민족사' 를 읽고 우리의 고대사에 대한 인식을 더욱 새롭게 했거니와 단군의 사료랄수도 있는 신라의 솔거 (率居)가 그린 단군의 영정이라던가, 황해도봉산 (鳳山) 의 단군묘 (檀君廟)에 있던 영정이 어떤 것인지를 알았을 때의 감격이란 이루 형언할 수 없었다.

이규행<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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