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속 500km…물위를 비행 '총알 고속선' 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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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20인승으로 시속 500㎞ 정도로 물위를 날아가는 배. 이는 시속 300㎞로 달릴 수 있는 고속전철을 느림보로 보이게 할 수 있는 속도다. 국방부와 과기부는 최근 이처럼 비행기인지, 배인지 구분하기 힘든 초고속선을 개발하기 위해 과제 공모에 나섰다. 이를 계기로 비행기 같은 초고속선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

1976년 미국의 스파이위성은 옛 소련 카스피해의 물 위에서 시속 550㎞로 질주하는 물체를 발견했다. 미국 정보부는 정체를 알 수 없어 '카스피해의 괴물'로 이름을 붙였다. 그도 그럴 것이 물 위에서 그렇게 빠른 속도로 달릴 수 있는 배도 없을 뿐더러 수면에 붙어 날 수 있는 비행기도 없었기 때문이다. 훗날 밝혀진 그 괴물의 정체는 옛 소련이 개발한 초고속선이었다. 이름은 'KM시리즈'. 길이 106m, 높이 40m로 군인 850명을 최고 시속 550㎞로 수송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배였다. 모양은 비행기를 닮았다. 지금까지도 일반 배 중 가장 빠른 공기부양선이 시속 140~180㎞에 불과하다.

한동안 이 배의 정체는 비밀에 붙여졌다. 옛 소련이나 지금의 러시아는 관련 기술 자체를 서방에 팔지 않아 지금까지 초고속선이 세계적으로 널리 건조되지 못했다.

우리나라 역시 군사적으로 대단히 필요했으나 기술 자체가 비행기와 배 등 두 가지 개발에 들어가는 첨단 기술이 모두 필요하기 때문에 제대로 손을 대지 못했다. 한때 시속 100㎞ 내외의 소형 저속 시험선을 개발하는 데 그쳤을 뿐이다.

카스피해 괴물의 정체가 알려진 뒤 미국.중국.독일.일본 등 각국이 개발에 나서고 있으나 아직도 옛 소련만큼 고성능 초고속선을 건조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싱가포르 등이 상용 선박 개발에 실패했으며, 미국도 이렇다할 초고속선을 보유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다시 개발 열기가 일고 있다. 그만큼 이점이 크기 때문이다.

미국 보잉사는 올해 비행기와 초고속선 겸용 초대형 수송기 개발에 나섰다. 벌써 이름도 '펠리칸'으로 붙여놓았다.

태평양 등 대양을 횡단할 때는 수면 위 6m에서 순항 속도 시속 430㎞로, 비행기로 쓸 때는 고공에서 시속 860㎞로 날 수 있게 설계됐다. 날개 길이만 109m에 이르며, 1400t의 화물을 싣고 태평양을 횡단할 수 있게 만든다는 계획이다. 육지에서 이착륙하게 된다.

중국은 98년 15인승을 개발해 관광용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현재 20인승을 개발 중이다. 독일도 정부 지원을 받아 80인승을 개발하고 있다.

초고속선은 물위를 20㎝~6m 정도 떠 운항된다. 이는 배의 단점인 물의 마찰과 비행기의 단점인 날개 끝에 발생하는 와류를 크게 줄일 수 있다. 물의 마찰과 날개끝 와류는 물체의 순항 속도를 떨어뜨리는 큰 요인이다.

한국해양연구원 강국진 박사는 "날개 끝 와류의 경우 돌개바람과 유사한 것으로 비행기를 땅으로 끌어 내리는 힘을 만든다. 초고속선이 물위를 아스아슬하게 날게 되면 그 와류의 상당부분을 물이 막아준다.

또 배가 전진할 때 날개와 수면 사이에 압력이 생기는데 이는 초고속선을 뜨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이 덕에 일반 배보다는 몇배 빠르게, 비행기보다는 훨씬 적은 연료량으로 운항이 가능한 것이다.

초고속선을 군사용으로 사용하면 적의 간담을 서늘하게 할 정도의 전력을 구사할 수 있다.

한국해양연구원 김기섭 박사는 "수면 위를 날기 때문에 대공 레이더로는 탐지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대함 유도탄이나 잠수함으로도 요격이 어렵다"며 "대규모 병력을 순식간에 공수할 수 있는 이점도 있다"고 말했다. 공항이나 활주로도 필요없어 더욱 위협적이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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