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공격만 해 봐라, 10배로 보복할 준비 돼 있어”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16호 06면

민간인 출입이 차단된 비무장지대(DMZ). 5월의 열기 아래 멀리서 보면 아늑한 숲만 같다. 그러나 한 걸음만 들어가면 분위기는 일변한다. 철모에 총을 찬 녹색의 병사들이 먼지를 일으키며 개미굴 속 개미처럼 분주히 오간다.

DMZ서만 31년, 15사단 장정태 원사

어둠이 깔린 DMZ는 시커멓고 괴상하다. 검은 공간 속에서, 낮에는 푸르던 잎들이 싸늘해진 바람에 ‘쏴’ 소리를 내며 무섬증을 일으킨다. DMZ의 사나이들은 어둠의 틈새에서 헛것에 놀라고, 별을 보며 밤을 버티다 새벽을 맞는다. 그렇게 30년 넘게 살아온 사람이 있다면 뭐라 불러야 할까. DMZ의 귀신 혹은 마당발, 산증인…산뜻한 용어가 당장 생각나지 않는다.

15사단 번개부대 1대대 장정태(53·사진) 주임원사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날수로 1만 일 넘게 DMZ로 출퇴근하며 평생을 바친 군인. 고 김일성 주석이 군번줄을 한 다발 줘도 바꾸지 않겠다던 혈전의 무대 오성산과 뺏겼다면 춘천까지 내줬어야 할 만큼 요충지인 대성산 사이에 자리잡은 15사단.

15사단(사단장 이용광 소장)은 2군단 7사단과 5군단 3사단 사이 중부전선 정중앙 DMZ 20㎞ 정도를 맡고 번개 부대는 그 가운데 반을 맡는다. 서부의 다른 사단과 달리 담당 구역 전체가 산악이라 북한이 도발하기 쉽지 않지만 1968년 무장공비 김신조의 특수부대가 지나간 뒤 이름 붙은 ‘신조계곡’이 있을 만큼 한때 예민한 지역이어서 긴장이 조금도 떨어지지 않는다. 2009년 5월 28일 중부전선 705고지 정상의 사무실에서 장 원사는 30여 년 전 그날처럼 오늘도 철책을 살피고, 철책을 살피는 군인들을 돌본다.

DMZ 근무는 GOP 근무, GP 근무, 수색·매복으로 대별된다. GOP 근무는 철책 초소에서 관측하거나 경계를 한다. GP는 철책 안쪽에서 북한을 관측·감시하는 최전방 더듬이다. 수색·매복은 군사분계선(MDL) 남쪽에 은닉하며 북한을 감시하고 침투를 저지한다. 모두 힘들다. 야간 매복 때는 조금만 부스럭거려도 탄창을 바닥낼 만큼 쏘아대는 긴장의 연속이다. 힘들고 재미없고, 자칫 목숨을 날릴 수 있는 업무다.

경북 영천 장정 장정태는 77년 입대해 그해 9월 하사를 자원, 78년 1월 6일 2대대 5중대 분대장으로 삼천봉 GOP의 OP(관측소)에 배치된 이후 세 업무를 번갈아 해왔다. 85년엔 수색대대 창설 요원도 했다. 당시 이 부대가 배정받은 터는 늪지. 꿀렁이는 바닥에 24인용 천막 8동을 치고 27개월을 살았다. 지금 수색 대대 3중대가 있는 자리다.

한때 지뢰도 밟을 뻔했다. 83년 931고지 OP에서 지뢰 100개를 제거하고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지뢰 옆구리를 밟은 것이다. 지뢰 핀을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그런 위험을 겪으면서도 DMZ를 고집한 지 32년. 첫딸이 시집을 가 손주가 있고, 중사로 있는 막내도 6월 6일이면 합참의장 주례로 결혼할 만큼 세월이 지나 2011년이면 퇴직이다. 그 사이 딱 1년만 DMZ 밖에서 근무했다.

-뭐가 좋아 DMZ를 고집했나.
“여기가 답답해 보여도 정이 많고 재미있다. 83년 중사 때 전역하는 선배가 ‘남아서 사수해라. 후방 간 사람들은 다 망했다’는 말도 했다. 한 우물 팔 생각만 했다. 연대의 주임원사로 갈 기회가 있었지만 자원해서 DMZ에 머물렀다.”

-낮에는 숲, 밤에는 컴컴한 하늘만 보는 생활이 뭐 좋은가.
“사실 나는 사회생활 문외한이다. 그러나 후방에 안 가길 잘했다는 생각은 여전하다. 난 군대가 좋았다. 어린 시절 살던 영천에는 3군 사관학교가 있었는데 생도를 선망의 눈으로 봤다. 그런 영향이 있겠지….”

32년 군생활, 31년 DMZ 생활. 그의 눈에 비친 변화의 모습은 어떨까.

“근무 시작 때만도 부대 전체가 숲이었고 길도 좁은 비포장이었다. 부식을 지게로 날랐는데 길 만드는 작업도 많이 했다. 지금도 군용지프로 25분 걸리는데 걸어 내려가면 1시간30분이다. 부식을 지고 올라 오려면 훨씬 더 걸린다.” 지금도 도로 폭은 조금 넓어졌지만 여전히 비포장이고, 눈 쌓인 겨울엔 차량 운행을 중지해 휴가 병사도 걸어 내려가야 하는 외진 곳이다.

꽁보리로 기억나는 짬밥, 닭고기가 겨우 부식으로 나오기 시작했고 유달리 많이 나온 양고기로 찌개를 많이 끓여 먹었다고 한다. “지금은 현대식이지만 2007년까지 난로를 때는 구형 막사였고…. 참 야간 투시경도 도입됐다.”

북한 변화에 대해서는 “맞은편 북한 월봉산 뒤 사면에 군관 막사가 있는데 내가 근무를 시작한 뒤 아무것도 변한 게 없다“고 했다.

그날 저녁 DMZ 초소 시커먼 어둠 속에서 북쪽을 오래 지켜봤다. 컴컴했다. 오후 9시30분 남측 투광등이 일제히 들어왔다. 북한은 여전히 캄캄하다. 그런 북한이 요즘 대남 응징을 들먹인다. 장 주임원사는 말한다.

“공격만 해와 봐라. 세 배가 아닌 열 배로 보복할 준비가 철저히 돼 있다.”



GOP(General Out Post) DMZ 남방한계선과 접해 있는 경계초소로 ‘일반 전초’라고 한다.
GP(Guard Post) 군사분계선과 남방한계 철책선 안에 있는 아군 감시초소.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