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유성 산업은행장의 오해, 우선순위가 틀렸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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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호 35면

지난 23일 청계산에서 합동 등반대회를 한 산업은행 노사가 공동선언을 했다. 경제위기 극복, 녹색금융 실천, 민영화의 성공적 추진을 위해 함께 노력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노조가 현실로 받아들일 만큼 산은 민영화가 본궤도에 올랐다는 신호다.

20여 일 전인 지난달 29일 국회는 산은을 은행지주회사와 정책금융공사(KPBC)로 분리해 은행부문을 민영화하는 산업은행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안에 따르면 금융안정기금 운영과 중소기업 보증 등의 역할을 하는 정책금융공사를 독립시킨 뒤 산은ㆍ대우증권ㆍ산은캐피털ㆍ산은자산운용 등을 지주회사로 묶어 5년 이내에 민영화를 하게 된다.

산은 민영화는 ‘작은 정부, 큰 시장’을 모토로 하는 MB 경제정책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산은 노사가 공동선언을 한 것도 대세를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양측은 함께 기업금융과 투자은행(IB) 업무에 강점을 가진 국내 최고 수준의 은행으로 거듭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그럼에도 민영화 의지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힘든 대목이 눈에 띈다.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민영화에 앞서 다른 은행을 인수하겠다는 것이 그것이다.

민유성 행장은 지난 7일 사내 민영화대회에서 “국내 금융산업 재편에 도움이 되고 기존 금융기관과 시너지 효과도 높일 수 있는 전략적 인수합병(M&A)을 고려할 수 있다”며 M&A 추진을 공식화했다. 59개에 불과한 지점 수론 자금을 원활히 조달하기 어렵고 민영화 때 매각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라도 필요하다는 게 산은의 설명이다.

금융권의 반응은 냉담하다. 산업은행의 덩치를 불린 뒤 민영화할 경우 글로벌 투자은행 육성이나 금융산업 선진화라는 취지가 사라지고 시장 혼란만 가중될 것이란 이유에서다.

한 시중은행장은 “민영화가 급하다면 지금 당장 매각이 가능한 대우증권부터 팔면 될 것”이라며 “정부나 산은의 생각대로 은행이 만들어지고, 그 은행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거란 생각 자체가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했다.

은행의 적정 규모나 경쟁력 평가를 시장에 맡기지 않고 ‘메가뱅크’부터 만드는 건 MB 정부의 모토에도 부합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런 우려를 뒷받침하는 경험도 있다. 공적자금이 투입된 부실은행들을 통합해 만든 우리은행이다.

당초 2005년 3월 민영화할 예정이었지만 4년 넘게 뚜렷한 계획조차 세우지 못하고 있다. 허술한 리스크 관리와 고객과의 잦은 분쟁에도 불구하고 무리한 외형경쟁을 촉발해 글로벌 금융위기의 후유증을 키웠다는 비판도 받는다.

마침 산은법의 민영화 시한은 MB 정부가 끝난 뒤인 ‘5년’으로 정해져 있다. ‘M&A 뒤 민영화’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어정쩡한 금융공룡의 탄생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한창 진행 중이다. 안팎의 사정이 민영화와 메가뱅크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만큼 한가하지 않다. 정부는 둘 사이에서 더 이상 우왕좌왕하지 말고 우선순위를 분명히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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