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불황 어린이들도 큰 상처…정신적·육체적 후유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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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서울 광장동 K초등학교 4학년인 김모양은 요즘 결석이 잦다.지난 겨울 아버지 회사가 부도나 할머니와 함께 지하셋방에 살기 시작한 후 짖궂은 남자아이들이 '더럽다' 고 놀려대기 때문. 국제통화기금 (IMF) 한파로 갑작스레 불어닥친 빈곤의 그림자는 성장기의 어린이에게는 영원히 극복할 수 없는 정신적.육체적 후유증을 남길 수도 있다.

한국어린이보호회 이영옥 상담원은 "아이들은 새 환경에 적응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며 특히 과보호아래 자란 아이들은 더 큰 충격을 받는다" 고 말했다.

우선 아동기의 빈곤은 신체적 성장을 방해한다.

성장.발달을 위한 하루 칼로리 섭취량은 성인의 1백20%정도. 여기에다 성장에 필수인 양질의 단백질과 비타민.철분등을 제대로 섭취하지 못하면 신체 발달이 부진한 것은 물론 면역력이 떨어져 질병에 시달리게 된다.

또 자의식이 강하고 정서적으로 완성되지 않은 청소년기의 사회적 분노는 반사회적 성향으로, 열등의식은 우울증으로 발전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에서 28~29년 태어나 30년대 대공황기에 어린시절을 보낸 미국인들은 자신감과 자율성이 부족했으며 청소년기에도 비관론적인 인생론을 가지고 있다는 한 연구결과가 이를 입증한다.

다행한 것은 자아가 어느정도 확립된 청소년기에 불황기를 겪은 경우 경제적 어려움이 오히려 '약' 이 될수도 있다는 것. 아동기에는 비교적 풍족한 생활을 하다가 10대 이후 대공황기의 빈곤을 경험한 사람들은 오히려 청소년기부터 가치관이나 관심사가 어른스러웠으며 근면성과 독립심이 발달된 것으로 밝혀졌다.

또 50년이 지난 83년 이들을 다시 추적조사한 결과 어른이 돼서도 직업가치관이 투철하고 근면성을 중요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연세대 심리학과 이훈구교수도 "청소년기에 겪는 어려움은 성장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며 "부모가 자녀를 성인 취급하면서 함께 힘을 모으자고 도움을 청하면 자녀의 독립심과 가족 연대감을 강화시키는 효과를 거둘수 있다" 고 말했다.

황세희·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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