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은 완벽한 금연을 요구하고 있었지만,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상황은 대통령의 손에서 담배가 끊어지는 것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었다. 담배, 어쩌면 그것은 책·글과 함께 대통령을 지탱해 준 마지막 삼락(三樂·세 가지 즐거움)이었을지도 모른다. …책 읽고 글 쓰는 것조차 힘겨워진 상황에서 대통령이 기댈 수밖에 없는, 유일하지만 허약한 버팀목이 아니었을까. … 그러나 담배로는 끝내 태워 날려버릴 수 없었던 힘겨움.”
서거 직전까지 한동안 봉하마을 사저에 머물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연구와 집필 작업을 도왔던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 노 전 대통령의 마음을 가장 잘 읽는다는 윤 전 대변인이 영결식 전날인 28일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나날에 대한 기억을 담은 글을 홈페이지 ‘사람사는 세상’(www.knowhow.or.kr)에 올렸다.
윤 전 대변인은 “대통령은 시간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진보주의 연구’ 등에 대한 생각을 다듬어 나가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며 퇴임 이후의 일상을 전했다. 이어 “그 피폐한 시간 속에서도 서재 안 대통령의 자리 앞에는 언제나 수북이 책들이 놓여 있었다. 대통령은 끊임없이 책과 자료를 찾았다. 책 한 권을 읽고 나면 그 속에서 다시 두 권의 책을 찾았다”고 썼다.
글 속에는 노 전 대통령이 즐겨 읽은 책도 인용했다. “대통령은 자신을 찾는 사람들에게 읽은 책 가운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는 책들을 강력히 추천했다. 직접 수십 권을 구입해서 나눠주곤 했다. 지난해에는 폴 크루그먼의 『미래를 말하다』, 최근에는 유럽의 사회보장 체제를 설명한 『유러피언 드림』. 대통령은 특히 이 책을 최고의 책으로 평가하고 찬사를 보내며 이런 책을 꼭 한번 써보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판 유러피언 드림’.”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은 박연차 사건에 대한 수사가 봉하마을로 향하고 있던 4월 초 “내가 글도 안 쓰고 궁리도 안 하면 자네들조차 볼 일이 없어져서 노후가 얼마나 외로워지겠나? 이것도 다 살기 위한 몸부림이다. 이 글이 성공하지 못하면 자네들과도 인연을 접을 수밖에 없다. 이 일이 없으면 나를 찾아올 친구가 누가 있겠는가”라고 말했다고 윤 전 대변인은 전했다.
침울했던 집안 분위기도 전했다. 윤 전 대변인은 “4월 중순, 사저는 생기를 잃어 가면서 때로는 적막감마저 휘감고 돌았다”며 “특유의 농담이 사라진 지는 이미 오래, 이제는 부산 사투리의 억양마저 없어진 듯 나지막하고도 담담한 대통령의 어조가 서재 밑바닥으로 조용히 가라앉고 있었다”고 기억했다.
임장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