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송진혁 칼럼

수도 이전보다 먼저 할 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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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장래 유망한 청년 에드몽 단테스는 친구의 비열한 밀고로 절해 외딴 섬의 절망적인 감옥에서 14년을 보내다가 탈출해 마침내 복수하고 인생의 승리자가 된다. 19세기 프랑스 작가 뒤마의 소설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얘기다. 그러나 우리의 장동학씨는 민주주의와 인권을 소리높이 외치는 20~21세기의 44년 동안 전남 해안의 외딴 섬에 갇혀 절망적인 강제노역을 했지만 그는 곧 쓸쓸히 부랑자 보호시설에 들어갈 것이라는 소식뿐이다. 다섯살 때 섬으로 끌려가 49세가 되도록 혹사당했다는 장씨에게 국민의 생명과 인권을 보호한다는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다. 44년이란 기나긴 세월 그는 국가없이 지냈다. 40년이 넘도록 국내의 그를 구하지 못한 국가가 이역만리 이라크의 김선일씨를 구하지 못한 것은 오히려 당연한지 모른다.

*** 크고 거룩한 개혁만 개혁인가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간첩과 빨치산의 인권과 인간존엄성까지 염려하고 있는데 대한민국 국민인 장동학씨의 인권과 인간존엄성은 누가 보살피는가. 그의 기막힌 사건이 알려지고도 누구 하나 깊이 반성했다거나 무릎을 치며 통분해 했다는 얘기를 들은 일이 없다. 장씨에게 대한민국이 국가노릇을 제대로 못한 책임을 누가 지는가. 국가를 대표해 누군가가 그에게 사죄하고 위로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언론 역시 그저 어느날 하루 뉴스 한토막, 기사 몇줄을 보도한 것으로 그뿐이었다.

도대체 개혁이란 무엇일까. 자기 국민이 그렇게 오랜 세월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도 구출하지 못하는 국가를 그대로 두고 한다는 개혁이 무슨 개혁일까. 아직도 장씨 같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고 말한다. 지금도 다방에서, 윤락업소에서, 외딴 섬에서, 수용시설에서 장씨 같은 고통을 겪는 사람이 수없이 많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렇다면 국가는 이들을 하루 빨리 구출해내야 하지 않겠는가. 국민의 생명과 인권을 지켜주는 일보다 더 급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지금의 국가 능력으로 부족하다면 그 능력부터 확보하는 것이 가장 급한 개혁이 아니겠는가.

크고 거룩한 개혁만이 개혁이 아니다. 좌파나 사상가의 인권만 고귀한 것이 아니다. 우리 근처에서 날마다 일어나는 불법.인권유린.폭력.환경악화…등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고 그런 문제들을 해결.완화해 나가는 것이야말로 가장 기본적인 개혁이다. 거창하게 사회안전망 확충이니 복지확대를 말하자는 게 아니다. 국가를 최소한 국가답게 하는 것, 최소한의 '국가 노릇'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개혁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그런 개혁을 하고 있는가. 장씨 경우나 이라크에서 당한 김선일씨의 경우를 보면 우리는 아직 멀었다. 노상 시스템을 강조하는 이 정부에서 최소한의 국가 시스템도 작동되지 않았다. AP 기자의 문의전화가 오면 성실한 확인작업을 하는 것이 최소한 기본이다. 문화부장관 내정자의 청탁 의혹 진정서가 들어오면 개각 전에 확실히 알아보는 게 최소한의 기본이다. 이런 '최소한'마저 우리에겐 없다. 또 어떤 장씨 같은 사람이 신음하고 있어도, 불행한 김선일씨 같은 제2의 피랍사건이 일어나도 대한민국이 '최소한의 국가노릇'을 할 것이라는 믿음이 아직도 없다.

*** '최소한의 국가 노릇' 확보해야

그런데도 지금 우리는 '크고 거룩한'개혁 때문에 편할 날이 없다. 수도 이전을 해야 나라가 서고 그걸 비판하는 것은 대통령 퇴진운동이라고 한다. 정부중앙청사 앞에 거대 빌딩을 가진 신문사의 기득권 때문에 막중국사가 안 된다는 발언도 나왔다. 이렇게 치고받는 동안 장씨가 어떻게 되는지는 아예 관심도 없고, 이젠 김선일씨의 죽음도 관심의 뒷전에 밀리고 있다. 장씨나 김선일씨 유족이 대한민국의 국가로서의 존재감을 좀더 확실히 느끼게 하는 어떤 조치도 나오지 않고 있다.

수도과밀 해소와 지방 균형발전은 꼭 필요한 일이다. 의문사도 규명해야 하고 민주화 기여 인사들에게 보상도 해야 한다. 그러나 그런 일보다 먼저 할 일이 있다. 국가가 국민을 보살피는 '최소한의 국가 노릇'을 확보하는 개혁이 가장 급선무다.

국민이 보호받고 먹고 사는, 당장 절실하고 실질적인 문제부터 논의해야 한다. 수도 이전 문제 같은 것은 좀 천천히 논의해도 늦지 않다. 지금도 수많은 장씨가 어디선가 울고 있는 게 분명한데 수도 이전 문제로 날을 다 보내서야 되겠는가.

송진혁 논설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