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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고비처 신설 재검토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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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최근 정부와 여당에서 추진 중인 부패방지위원회 산하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고비처) 신설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이로써 홍콩의 염정공서(廉政公署)나 싱가포르의 부패행위조사국 등과 같이 기존의 검찰조직과는 별도의 특별사정기구가 설치될 전망이다. 그 수사대상은 대통령 친인척, 차관급 이상 공무원, 국회의원, 광역자치단체장, 법관.검사.군 장성, 경무관급 이상 경찰, 대통령 임명 산하단체장 이상 공직자 등(4500여명)의 배우자.직계 존비속.형제자매 등이다.

결국 따지고 보면 고비처의 수사대상은 검찰 스스로를 제외하고는 검찰의 주 수사범위와 일치한다. 따라서 검찰 내부에서 '대통령이 검찰권을 독립시켜줬다고 내세우면서도, 실제로는 검찰의 손발을 자르고 또 다른 친위부대를 하나 만들어 보겠다는 뜻으로 보인다'는 격한 반응과 '기업수사 등을 하다 보면 공직자나 정치인 비리조사와 연결되는 게 보통인데, 공직자 비리만을 따로 떼내어 수사하겠다는 것은 수사 실무를 이해하지 못한 발상'이라는 비판이 있는 건 사실이다. 또한 그동안 대선자금 수사를 통해 정치적 중립성과 국민적 신뢰를 회복해 가고 있는 상황에서 외부 특별사정기구의 신설은 '옥상옥' 이라는 검찰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바로 이 대목에서 검찰은 뼈아픈 반성이 필요하다. 다시 말하면 검찰의 주 임무가 법의 엄정성을 지키는 공소 유지와 대형 정치.경제사건을 포함하는 고위공직자비리에 대한 수사인데, 과연 그 본연의 직무를 이제까지 얼마나 충실히 수행했는지이다. 전후 일본은 맥아더에 의해 경찰수사권이 독립됐고, 그리하여 검찰은 1차적 수사권을 경찰에 넘겨주고 2차 보충적 수사기관으로서 도쿄 특수부를 중심으로 고도의 정치범죄(다나카.록히드 사건 등), 대형 경제사범을 포함하는 고위공직자비리 등의 수사에 올인해 오늘날까지 국민의 절대적 신뢰를 받게 된 것을 벤치마킹해야 할 것이다. 우리 검찰은 왜 이제까지 정치적 중립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으며, 경찰수사를 통제한다는 명분으로 일반 민생침해 범죄에 지나치게 관여해 조직의 힘이 분산되고 그 본연의 중요한 임무가 소홀히 되지 않았는지 점검이 필요하다. 검찰의 경찰에 대한 통제는 사건이 검찰에 송치돼 기소와 공소 유지 과정에서도 법적 통제로 충분한데, 공연히 처음부터 불필요한 간섭은 하지 않았는지 등이다.

검찰 비리를 적발하고 검찰수사에 대한 제1의 견제는 경찰수사가 돼야 하는 것은 선진국의 사정 시스템을 볼 때 명백하다. 현재 경찰의 비리수사는 검찰에서 하고 있는데, 검찰의 비리수사를 위해서도 경찰의 수사권 독립이 필요하다. 결국 경찰의 수사권 독립은 경찰과 검찰 기능의 정상화와 상호견제를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조건인 것이며 그것은 노무현 정부의 공약사항이기도 하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부방위 산하 고비처에서 고도의 정치적 범죄를 다루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왜냐하면 대통령 직속기구의 성격으로 보아 야당으로부터 정치적 중립성의 시비가 지금보다도 더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인사청문회와 임기보장을 해도 임명권자의 눈치를 보기는 마찬가지다. 따라서 고도의 정치적 사건은 현재 인사위원회 강화 등 검찰의 정치적 중립의 제도적 장치를 보다 철저히 해 다시 검찰이 담당하든지, 아니면 대통령으로부터 독립된 특검제로 가는 것이 원칙이다.

그 밖에 고비처에서 취급한다는 고위공직자비리 사건은 경찰수사권을 독립시켜 검.경이 경쟁적으로 수사해야 효과적인 통제가 가능하다. 따라서 공연히 예산과 인력을 낭비하며 사정기관 간의 혼란을 야기할 우려가 있는, 선진국에서 찾아볼 수 없는 고비처는 재검토돼야 한다. 검찰과 경찰을 정상적인 사정기관으로 만들어 놓는 것이야말로 부패방지의 첩경임을 강조하는 바다.

이관희 경찰대 교수.헌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