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조백일장]초대시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찬 봄

김상묵 (金尙墨)

작년도 재작년도 가슴 트러 왔던 들녘

봄마저 지레 와서 아지랑일 덧씌운다

답답증 밑불을 지펴 충동하는 춘분께

앞켠에 누군가가 구둣발로 냉일 캔다

꺼먼 비닐 봉지에 한가득한 저 진저리

옳거니 실직한 중년 파고묻는 속근심들

땀 내어 또 찍어도 나물이 안집힌다

어릿어릿 그 무엇이 자꾸만 가리는 눈앞

진종일 뭉그린 터에 산만 하나 늘었다

◆시작메모

봄이 와도 봄 같지가 않다더니, 그게 정작 이런 무인년 봄을 두고 한 말만 같다.

급료동결 처분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내 오늘이기에 더욱 그렇다.

별도로 거느린 취미 하나가 변변한게 없어, 봄판이면 촌놈 아니랄까봐 녹슨 호미 추스려들고 구파발이나 서오능 주변 어디 한바퀴 돌다 오는게 한 버릇인데, 이번엔 되레 뭉클한 꼴만 보고 오게 돼서 어쩌다 쓰는 일기마저 눅눅해졌다.

그러나 어쩔 것이며 누구를 탓할 건가.

어서 세월이나 한 자위 후딱 돌아서 두 번째 서력 천년을 마감한다는 99년 새봄이나 오면 뭔가 좀 달라지려나 기다려 볼밖에…. 서둘러 들이닥친 봄치고는 무연히 속가슴이 끝간 데 없이 썰렁하다.

◆약 력

▶1947년 충남 성환 출생

▶6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조집 '김상묵사설' '로사' 등

▶제3회 오늘의 시조시학상 수상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