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 사법비리]상.죄의식없는 법조계 접대문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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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소문으로만 나돌던 변호사와 판.검사들의 유착실태가 검찰의 의정부지역 판.검사 비리 수사로 드러났다.

검사 2명, 판사 15명이 비리에 연루된 것으로 밝혀진 이번 법조계 비리는 '사법 불신' 으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

법조 비리의 현실과 원인, 개선방향 등을 세차례의 시리즈로 짚어본다.

모 지방법원의 A부장판사. 의정부 판사 비리 의혹이 불거져 나오기 전까지는 한달에 두번 정도 가족이 있는 서울로 올라갈 때마다 판사.변호사들과 골프를 쳤다.

변호사들이 모두 서울에 있는 고교동문이거나 한때 같이 근무했던 판사출신인데다 지방에서 근무하는 자신과 사건 당사자로 만날 일이 없고 수입이 좋은 변호사의 골프비용 부담이 무슨 문제가 될 수 있느냐는 게 그의 생각이다.

하지만 A부장이 지방근무를 마치고 수도권으로 옮겨왔을 때 그동안 어울려온 변호사들이 사건을 들고와 선처를 부탁할 경우 냉정하게 뿌리칠 수 있을까. 사법사상 최대의 법조비리로 현직판사가 검찰의 조사를 받는 사태로 이어진 의정부 '돈판사' 사건도 따지고 보면 이같은 죄의식 없는 접대문화의 연장선상에 있다.

법조계에는 이처럼 일반인들이 의혹의 눈길을 보낼 만한 독특한 접대문화가 자리잡고 있으나 당사자들은 그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 골프.음식 접대나 소위 '전관예우' 라는 관행이 판.검사와 변호사간의 유착관계를 형성하고 한발 진전되면 돈이 개입된 비리가 된다.

유착대상은 판사와 검사가 조금 다르다.

검사들은 주로 학연.지연으로 이어진 기업인 등과 많이 어울리는 반면 판사들은 주로 변호사다.

서울지법 모 판사는 "검사들에게 변호사는 언젠가는 법정에서 유.무죄 다툼을 벌여야 하는 껄끄러운 존재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검사들은 변호사보다 권력에 선을 대려는 사업가들과 자주 어울리는 것 같다" 말했다.

바로 이같은 판.검사들의 대인관계 특성 때문에 이번 의정부지원 사건처럼 변호사 관련 법조비리가 말썽이 나면 주로 판사와의 유착관계가 드러난다.

실제로 이번 법조계 비리의혹에 대한 검찰수사의 단서를 제공한 이순호 (李順浩.38) 변호사는 한 전문도박단 사건으로 구속된 7명의 변호를 맡아 법원에서 이들 모두를 구속적부심이나 보석으로 풀어내는 수완을 발휘한 적이 있다.

판사출신인 방희선 (方熙宣) 변호사는 '가지 않으면 길은 없다' 라는 책에서 법조인들의 '전관예우' 습성과 관련, "일부 고위직 출신중에는 청부폭력.마약사범 등 악질적 범죄인들을 그냥 풀어달라고 판사실로 찾아오는 기막힌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고 지적했다.

변호사 개혁모임을 주도하고 있는 손광운 (孫光雲) 변호사는 "판사.검사.변호사 등 법조 3륜 (輪) 모두가 사소한 접대관행도 국민들의 눈에는 형평성을 상실한 판결이나 결정을 내리는 원인으로 비쳐질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만 법조 비리나 유착이란 말이 없어질 수 있을 것" 이라고 강조했다.

이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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