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언론이 본 ‘한국의 비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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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해외 유수 언론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깊이 애도하며 임기 중 그가 이룬 정치적 치적을 평가했다.

홍콩의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는 24일 “노 전 대통령은 한국 정치의 고질적인 재벌과 정치의 유착을 끊고 남북 평화 체제 구축과 민주주의를 성숙시키는 공적을 남겼다”고 평가했다. 명보(明報)도 “자신에게 엄격하고 남에게 관대해야 한다는 좌우명을 가진 노 전 대통령이 뇌물 스캔들에 휩싸여 비극적인 삶을 마감했지만 남북 긴장 완화와 권위주의 청산에 큰 족적을 남겼다”고 평가했다.

영국 더 타임스는 “부패한 사람들은 부패와 함께 살아갈 수 있지만 그는 자신이 잘못을 저질렀다는 사실과 타협할 수 없는 개혁운동가였다”고 논평했다.

23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개막된 ‘제5차 아시아-유럽 언론인 세미나’에 참석한 프랑스 다니엘 베르네 르몽드지 전 편집국장은 “사소한 부패 혐의 때문에 권총 자살한 피에르 베레고부아와 프랑스 전 총리의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충격적인 뉴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베레고부아 전 총리처럼 ‘깨끗한 이미지’가 무너진 데 대한 자책감을 견디지 못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번 사건의 원인을 제공한 한국 정치와 부패의 고리 문제에 대해 날카로운 지적도 잇따랐다.

명보는 “역대 한국의 대통령들이 부정 부패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은 한국의 경제발전 과정에서 형성된 재계와 정치권의 유착에 그 뿌리가 있다”고 분석했다.

일본 요미우리(讀賣) 신문은 “노 전 대통령의 비극은 한국 ‘정치문화’의 소산”이라며 “대통령에게 강력한 권력이 집중된 시스템 아래서 사익을 앞세운 세력이 지연·혈연을 이용해 대통령 가족과 측근들에게 금품 공세를 펴는 행태가 역대 정권에서 반복됐다”고 설명했다.

아사히(朝日)신문은 사설에서 “이번 비극이 검찰에 대한 비판과 여야 대립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며 “독재에서 민주화와 경제성장을 이룬 한국의 안정을 바란다”고 밝혔다. 마이니치(每日)신문은 “앞으로 더 큰 걱정은 노 전 대통령 측근과 지지자들이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정치적 타살’로 규정하고 이명박 정부를 공격할 조짐을 보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노이·홍콩·도쿄=배명복 순회특파원, 최형규·박소영 특파원, 서울=정용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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