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의문사위와 국방부의 갈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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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와 국방부 간의 갈등이 위험수위로 치닫고 있다. 양측은 1984년 군복무 중 사망한 허원근 일병의 사인을 놓고 수년째 '자살이다, 타살이다'하며 공방을 벌여왔다. 그러다 군 조사관이 의문사위 조사관에게 권총을 쏘는 위협까지 했다는 주장을 놓고 설전을 벌이는 지경에까지 왔다. 정부기관 간에 이런 한심한 행태가 빚어지고 있는데 상급기관은 방관하고 있다.

허 일병 사인 규명을 놓고 양 기관 간의 갈등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한쪽은 의혹을 캐내려 하고, 다른 쪽은 방어하는 데 전력을 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권총을 쐈다' '아니다. 가스총이다'하는 사태로 비화된 것은 정부의 기강이 땅에 떨어졌다는 반증이다. 정부기관의 상반된 주장이 제멋대로 발표되니 누가 정말인지 헷갈린다. 특히 이런 사태가 터져도 상급기관인 청와대나 총리실은 아무런 말이 없다. 정부의 조정기능이 마비됐음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갈등의 증폭현상에 국민은 넌더리를 내고 있다. 이런 마당에 한 군인의 사인을 놓고 국가기관 간에 이렇게 난맥상을 보여서야 되겠는가. 양 기관은 이제라도 한 발자국씩 물러나 냉정을 찾아야 한다.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독선과 오만이 있었다면 이제는 이를 버려야 한다. 의문사위 측이 과거의 '억울한 죽음'을 규명하는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의욕이 지나쳐 만에 하나 '군을 음해하고 있다'는 인상을 상대 측에 주어서는 안 된다. 지난 2월에 벌어진 총격 위협을 왜 이제서야 밝히는지도 궁금하다. 군도 무조건 방어막만 치지 말고 협조할 것이 있다면 협조해야 한다. 어느 누구도 어둠 속에서 죽어가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상급 기관의 조정능력 회복이다. 우선 권총 위협 사건의 진상부터 밝혀야 한다. 어느 쪽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철저히 조사해 관련자를 엄중 문책해야 한다. 그런 후에야 허 일병 사인 규명도 제대로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