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논술고사 유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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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우리들의 으뜸가는 관심사중 하나가 대학입시라는 데 대해서는 사족 (蛇足) 을 붙일 나위가 없다.

우리나라의 교육열이 세계 어느 나라에 비해서도 강하다는 사실은 주지돼 있는 일이다.

모든 국민이 교육전문가라는 말이 결코 지나치다고 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런만큼 교육에 대해선 어느 정권이고 다각적인 노력을 경주해 왔다.

그렇다고 만인이 만족할 제도나 방법이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대학입시가 교육의 전부는 물론 아니지만 대학입시가 국민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이만저만 큰 것이 아니다. 필자가 문교부장관이던 때 (83년10월~85년2월) 가장 큰 고민거리의 하나가 입학시험문제의 지나친 획일성.객관성이었다.

시험제도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는 없는 사정이었고 최소한의 주관식 방법이라도 강구돼야 한다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 고작이었다.

당시는 졸업정원제와 대입학력고사가 핵심과제였다.

필자는 84년에 몇달동안 주관식 입시문제를 개발하는 데 골몰했다.

많은 교육전문가들과 협의했지만 별로 소득이 없었다.

그러던 중 다년간 문교부를 출입하던 기자들이 생각났다.

중앙일보의 권순용 (權淳庸) 기자, 조선일보의 고학용 (高學用) 기자, 동아일보의 송석형 (宋錫亨) 기자와 자리를 같이하고 이 문제를 논의해봤다.

이 만남에서 도출된 의견의 하나가 논술고사였다.

필자 자신도 논술고사를 생각하고 있던 터여서 이 문제를 보다 구체적으로 다루기로 마음 먹었다.

전문학자들과 빈번히 만났고 자문위원회에 상정하기도 했다.

결국 입학생 선발에서 자율성을 신장하고 대입학력고사의 사지선택형 출제로 파생되는 문제점을 보완한다는 목적으로 논술고사를 실시키로 하고 86년도부터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많은 분들로부터 격려도 받았지만 반대에 부닥치기도 했다.

출제.채점.성적반영 비율 등에 어려움이 있다고 비판받기도 했지만 노력하면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논술고사는 86년도에 한차례 실시됐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94년부터 다시 부활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자기 생각을 논리적으로 서술하는 능력이나 글을 체계적으로 구성하는 능력은 언제나 존중될 수 있는 것인데, 논술고사는 이 능력을 평가하고 자극도 주는 것이니 더욱 합리적으로 개발돼야 한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논술고사는 해가 갈수록 그 중요성이나 비중이 커지고 있다.

대학입시에서 합격을 좌우하는 관건이 된다고 지적되기도 한다.

젊은이들에게 사고력을 제고시키고 창의력을 북돋워주는데 있어 논술고사는 지대한 역할을 해왔다고 믿는다.

누구에게나 독서는 유익하고 값진 것인데 특히 젊은 학생들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교양인과 독서가 밀접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점에 있어서는 일부에서 개탄의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논술고사가 평소의 독서를 전제로 하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다.

독서습관은 토론문화와도 관계가 깊다.

논술고사는 독서문화나 토론문화에 크게 기여한다고 믿는다.

한가지 첨언하고 싶은 것은 한자 (漢字)에 관한 제언이다.

보다 확실하게 문맥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한자의 구사가 요망된다.

근래에는 고전 (古典) 을 대상으로 논술고사문제가 출제되는 경향이 많은데 이런 경우에 한자가 혼용되거나 병기 (倂記) 된다면 문장의 내용을 훨씬 이해하기 쉽게 된다.

한자가 표의 (表意) 문자요, 우리나라 어구의 70% 이상이 한자에서 유래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더 설명할 필요가 없는 줄로 안다.

한글을 사랑하는 필자의 마음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하고 있다.

그렇지만 국한혼용이 우리 한글을 더욱 빛나게 한다고 굳게 믿고 있다.

새로 출범한 국민의 정부는 대학의 자율성을 기치의 하나로 내세우고 있다.

모든 대학인들이 바랐던 바다.

논술고사문제도 대학의 자율성이란 측면에서 보다 심도있게 다뤄졌으면 한다.

권이혁〈성균관대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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