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법연구회’ 판사들 앞장 … 이념 논란 번져 후유증 예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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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철 대법관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21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배석판사회의에서 참석자들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뉴시스]

21일 서울고법 배석판사회의를 끝으로 신영철 대법관의 재판 개입 논란과 관련한 ‘릴레이 판사회의’가 막을 내렸다.

14일부터 일주일간 전국 6개 고등법원 가운데 4곳, 20개 지방법원 가운데 13곳에서 열린 단독·배석판사회의에서 많은 판사가 “신 대법관이 직무를 계속 수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목소리를 높였으나 직접적인 사퇴 촉구는 하지 않았다. 지방법원의 한 판사는 “1995년 판사회의 제도가 도입된 이후 활성화되지 않고 있었는데 일선 판사들이 법원의 현안에 대해 토론하는 기회를 가진 것은 이번 판사회의의 성과”라고 말했다.

쟁점별로 보면 신 대법관이 e-메일을 보내 신속한 재판 진행을 요구한 행위 등에 대해서는 대다수가 “재판의 독립을 침해했다”고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법원 내부의 반론도 만만치 않다.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에서 제시한 것처럼 사법행정권의 일환이라고 볼 여지도 있다”며 “소장 판사들이 얼마나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판단을 내렸는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신 대법관에 대한 대법원의 ‘엄중 경고’ 조치가 적절했는지에 관해서도 대부분의 판사회의에서 “미흡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대법원 관계자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신 대법관을 윤리위에 회부하고 전국 법관 워크숍을 열어 일선 판사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까지 거쳤는데 이제 와서 새로운 결정을 내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신 대법관 거취 문제의 경우 의견이 엇갈렸다. 이 문제를 아예 논의하지 않은 법원이 있었던 반면 “용기와 희생이 필요하다”며 사실상 사퇴 촉구를 한 법원도 있었다. 대법원 관계자는 “신 대법관의 거취는 전적으로 본인이 결정할 문제로 집단행동을 통해 압박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엇갈리는 반응에서 알 수 있듯 이번 릴레이 판사회의는 작지 않은 후유증을 남길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29일 전국 법원장 간담회를 열어 사법행정권의 운영 방안과 판사회의에 대한 대책 등을 논의하기로 했다. 특히 판사회의의 와중에 불거진 이념 논란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대다수 판사들이 순수한 의도에서 참여했으나 진보 성향의 판사 모임인 ‘우리법연구회’의 역할이 두드러진 게 사실이다. 지난 8일 대법원 윤리위원회 결정 이후 릴레이 판사회의를 촉발시킨 내부통신망 게시 글 가운데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글이 모두 연구회 소속 판사들이 쓴 것이었다. 또 서울고법 배석판사회의의 제안자, 서울동부지법의 단독판사회의 의장 등은 연구회 회원이었다. 이에 대해 대한변협은 21일 성명을 통해 “대법원은 이념적인 사조직의 존재 여부 및 활동 상황을 조사해 해체하는 등의 조치를 조속히 단행하라”고 요구했다.

여기에 박시환 대법관의 ‘5차 사법파동’ 발언이 정치 쟁점화되고 있는 것은 사법부 전반에 상당한 부담으로 다가올 가능성이 크다.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는 20일 “스스로 물러날 사람은 신 대법관이 아니라 뒤에 앉아서 부채질하고 있는 박시환 대법관”이라고 문제 삼고 나섰다. 22일에는 “법관들이 이렇게 나오면 결과적으로 대법원장의 책임이다. 필요하면 진정시키고 설득해야 하는데 법관회의를 그대로 놔두고 뒤에 숨어 있다”며 이용훈 대법원장을 비판했다.

박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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