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늘어나는 노숙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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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영화 '애수 (哀愁)' 의 무대인 영국 런던 워털루역은 런던의 남쪽 관문 (關門) 이다.

플랫폼 숫자만 17개나 된다.

특히 지난 94년 영불 (英佛) 해저터널 개통후 유럽대륙을 잇는 특급열차 유러스타의 시발역이 됨으로써 워털루역의 위신은 더욱 높아졌다.

그러나 워털루의 위신을 깎는 흉물이 하나 있다.

워털루역 앞 교차로 밑의 '카드보드 시티' 가 그것이다.

상품포장용 종이박스를 이용해 집 아닌 집을 짓고 사는 홈리스 집단주거지역이다.

80년대 중반부터 시작돼 주민수 2백명을 넘은 적도 있으며, 아직도 30여명이 살고 있다.

최근 런던고등법원은 이들에게 이달말까지 철거명령을 내렸다.

영국영화연구소 (BFI) 는 이곳에 5백석 규모의 아이맥스 영화관을 세울 계획이다.

영국에홈리스 문제가 대두한 것은 80년대 들어서다.

마거릿 대처가 이끈 보수당정권은 복지.주택예산을 대폭 축소, 저소득층 가운데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이 거리로 밀려나온 것이다.

홈리스 보호 전문 민간단체인 셸터 (피난처) 조사에 따르면 잉글랜드에만 홈리스 숫자가 35만명이나 된다.

홈리스들은 인간으로서 한계상황을 살고 있다.

노숙이 장기간 계속되면 육체적.정신적으로 피폐상황에 이른다.

홈리스의 절반이 알콜중독자며, 3분의1이 정신건강에 이상이 있다는 통계가 있다.

자살률도 일반에 비해 월등히 높다.

런던의 한 구역에서 지난해 발생한 48명 자살자중 19명이 홈리스였다.

영국의홈리스 대책은 단기대책과 장기대책을 병행 실시하는 것이다.

단기대책으론 일시적 피난처를 제공하는 것이다.

추위와 배고픔을 피한 후에 사회복귀든 뭐든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로선 시설이 절대 부족한 상태다.

런던의 경우 5백여개 호스텔 (합숙소) 이 있으나 전체의 10%밖에 수용하지 못한다.

최근 효율적인 호스텔 알선을 위해 인터넷 서비스를 시작했다는 보도도 있다.

우리나라도 국제통화기금 (IMF) 사태로 인해 하루 1만명 가까이 실업자가 양산 (量産) 됨으로써 홈리스 문제가 무시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고 있다.

대도시 역.지하도에서 새우잠을 자는 사람들이 최근 크게 늘었다.

그러나 정부가 대책을 세운다는 소식은 아직 없다.

민간단체들이 주도하는 무료급식을 늘리는 것만으론 한계가 있다.

정부차원의 대책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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