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미도’ 촬영에 쓴 M16, AK47 진짜 총이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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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1996년 6월 미국 영화사 ‘파라마운트’ 계열사의 총기 소품 담당자인 폴은 M16, AK47, 베레타 권총 등 총기 18정을 한국에 들여 왔다. ‘살아있는 갈대’(가칭)라는 영화 촬영을 위해서였다. 그러나 촬영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돼 영화 제작은 무산됐다. 폴은 친분이 있던 한국의 영화 특수효과 업체 대표 정모(51)씨에게 ‘소품을 맡아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폴은 돌아오지 않았다. 정씨는 폴에게서 받은 총기를 13년간 불법으로 보관하며 영화 ‘실미도’ ‘공공의 적’ 제작진에게 소품으로 빌려줬다. 소품 대여비 명목으로 4000여만원을 받았다고 한다.

서울지방경찰청은 21일 M 16, AK 47, 베레타 권총 등 22정의 총기와 1000여 점의 군사용품을 공개했다. 총기류를 불법적으로 보관해 오거나 거래한 사람들에게서 압수한 것들이다. 일부는 실제 영화 제작에 사용됐다. [뉴시스]


서울경찰청은 총기류를 신고하지 않고 불법 보관한 혐의로 정씨 등 업체 관계자 3명을 불구속 입건하고, 총기 18정을 압수했다고 21일 밝혔다. 영화 촬영에 사용된 진짜 총기류는 촬영이 끝나면 국외로 반출하거나 폐기하도록 돼 있다.

경찰 조사 결과 정씨가 보관하던 총기는 사격이 가능할 정도로 상태도 양호했다. 보통 영화에서 사용되는 총은 실제와 유사하게 제작된 모조품이다. 실제 총이 사용된 경우에도 총열에 어댑터가 부착돼 있어 사격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정씨가 보관 중이던 총은 어댑터의 탈부착이 가능하다. 경찰 관계자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총기를 시험한 결과, 실탄만 있으면 언제든 사격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또 이날 인터넷을 통해 권총을 팔거나 산 혐의로 장모(38)씨 등 4명을 검거했다. 경찰에 따르면 장씨는 2005년 6월 ‘스미스 앤드 웨슨 M36 치프스페셜’ 권총 3정을 인터넷을 통해 이모(39)씨에게서 200만원에 산 혐의다. 또 다른 장모(22)씨는 지난해 5월 권모(31)씨에게서 ‘스미스 앤드 웨슨 38’권총을 40만원에 구입했다고 한다.

특히 군사용품 판매업자 문모(30)씨는 서울 동대문구 신설동에 간판 없는 가게를 차려 놓고 군사용품 1000여 점을 판매했다. 매장에는 M16 실탄 2발, M16 공이(실탄을 격발케 하는 소총의 핵심 부품), M60 기관총 총열, 지뢰탐지기, 군용 대검 등이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군용물 전시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많은 용품이 있었다”며 “부품을 모아서 조립하면 사용이 가능한 총기를 만들 정도였다”고 말했다. 차명진 의원(한나라당)이 관세청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총기류 밀반입 적발 건수는 2005년 8건이었지만, 2007년에는 125건으로 크게 늘었다.

장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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