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으로]신명호著 '조선의 왕'…솔선수범했던 왕들의 일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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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완연한 봄이다.

IMF.정치불안 등 들려오는 소식은 한결같이 무겁지만 남녘의 화신 (花信) 은 생명과 소생의 계절임을 실감케 한다.

조선시대에도 봄의 의미는 각별했다.

한 예로 세자 책봉례는 대부분 봄에 거행됐다.

풍성한 결실을 예비하는 봄과 같이 한 나라의 근원이 되는 왕의 책무를 충실히 대비해야 한다는 뜻에서다.

세자는 봄이기에 그의 거처를 춘궁 (春宮) 이라 했고, 오행으로 따져 봄은 동쪽이기에 동궁 (東宮) 으로도 불렀다.

다음주 초 선보일 정신문화연구원 신명호 선임연구원 (경희대 강사) 의 '조선의 왕' 에는 이처럼 흥미로운 사실들이 풍부하게 소개된다 (가람기획刊) . 술자리 안주감이나 드라마 정치소재로 다뤄졌던 조선시대 왕들의 모든 것을 여러 사료를 토대로 읽기 쉽게 재현한 동시에 과거로부터 우리가 끌어내야 할 가르침도 선명하게 제시한다.

전제왕조와 대의민주주의라는 시대.체제적 간극을 넘어 역사의 현재적 의미를 파고드는 셈. 무엇보다 다양한 읽을거리가 장점이다.

출생부터 임종까지 일생을 쭉 따라가면서 왕들의 교육.행적.지위.권한 등을 두루 살펴본다.

예컨대 갓 태어난 왕자의 배냇저고리는 조정 관료 중 무병장수한 사람이 입었던 무명옷을 이용했다.

왕실부터 물자절약을 솔선했다는 저자의 해석이 다소 무리하게 다가오지만 오래 입은 무명옷이 새것보다 부드러워 유아에게 좋다는 설명은 과학적이다.

유모가 육조판서보다 높은 종1품 품계를 받았고, 왕의 이름은 함부로 부를 수 없어 과거시험 답안에 역대 왕의 이름이 들어가면 무조건 낙방했다는 이야기도 재미있다.

실제로 태조 이성계는 왕위에 오르며 흔한 글자인 성계 (成桂) 를 단 (旦) 으로 고쳤다.

우리가 주의 깊게 살펴볼 부분은 왕들의 일상생활. 저자는 백성을 살피고 돌보기 위해 오랫동안 준비하고 또 이를 실천하기 위해 정진했던 지도자의 모습에 무게를 싣고 있다.

4세 때부터 매일 세 차례씩 유교경전과 역사서를 공부하고, 왕위에 올라서도 아침.낮.저녁.밤 4단계로 나눠 학문과 공무에 잠시도 한눈 팔 여유가 없었던 왕들의 일과를 조목조목 보여준다.

일부 왕들은 사냥.주색으로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대다수는 여가 시간마저 독서.명상.저술에 할애했다.

폭군으로 알려진 연산군은 많은 시를, 영조는 글씨.산문 등 수천 점의 작품을 남겼으며 정조의 문집은 1백여 책에 이른다.

특히 천재지변이나 변괴가 발생하면 왕들은 우선 자신을 반성했다.

자신의 마음가짐과 통치행위에 조금이라도 잘못이 있는가를 살피고 만약 그런 것이 밝혀지면 과감하게 바로 잡았다.

임무 소홀에 대한 자책의 하나로 먹는 음식의 가짓수를 줄이기도 했다.

학식이 출중했던 영조의 경우 어려운 사안이 있으면 결론이 날 때까지 회의를 열어 저녁이 되면 신하를 기다리게 하고 혼자 식사를 하고 원기를 회복해 토론을 재개했다는 지금으로선 얄미운 (?) 일화도 있다.

이밖에 세자가 정치나 인사에 개입하면 바로 탄핵이 뒤따르는 등 왕족.친족들의 정치참여를 철저히 배제하려 한 것도 우리 현대정치사의 과오를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대목이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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