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대북 식량지원 국민합의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새 정부 출범 며칠도 되지 않아 대북 (對北) 정책을 두고 새로운 접근 방안이 불쑥불쑥 튀어 나와 국민을 어리둥절하게 하고 있다.

이러한 방안들을 접하면서 국민이 느끼는 것은 새로운 정책에 대한 참신성보다는 혼란과 당혹감이다.

북한 정책이 바뀌려면 객관적인 여건이 바뀌어야 하는데 그러한 조건이 충족됐다는 확신이 안서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최근의 대북 식량지원에 관한 보도다.

이 보도에 따르면 정부는 조만간 10만t의 식량을 북한에 제공할 작정인 것처럼 돼 있다.

혼란스러운 것은 지금까지 북한에서 구호활동을 벌여 온 세계식량계획 (WFP) 의 요청에 따라 제공한다는 내용과 정부가 '남북 당국간 합의를 통한 직접 지원방식' 으로 전환한다는 내용으로 보도가 엇갈리고 있다는 점이다.

이 보도와 관련해 궁금한 점은 직접지원방식으로 전환한다는 방침이 어떤 과정을 거쳐 결정됐는가 하는 점이다.

북한에 대한 식량 직접지원은 95년 북한측이 식량을 싣고 간 우리 수송선에 인공기 (人共旗) 를 달게 하고 선원을 억류하는 일이 벌어져 국민의 분노만 키우고 중단된 경험이 있다.

중국 베이징 (北京)에서 북한과의 합의에 따라 쌀 15만t까지 제공하고 지원을 중단하면서 정부는 직접지원을 계속할 수 있는 원칙을 만들었다.

제3국이 아닌 한반도내에서 남북한 당국자간 회담이 이루어져야 지원에 나선다는 원칙이다.

현재 이러한 원칙이 지켜질 수 있는 상황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또 북한이 그러한 원칙을 받아들인다 해도 북한에 대한 정부의 직접.대규모 식량지원에는 국민의 동의와 지지가 필요하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금과 같은 형편에서는 더욱 필수적인 절차다.

더욱 혼란스러운 것은 정책방향이 책임있는 당국자의 발표를 통해 공식화되지 않고 풍문처럼 전해지고 있는 점이다.

마치 여론을 떠보려는 듯한 인상을 주는 방법이다.

대북 정책이라는 점에서 더욱 경계해야 할 정책 설정방법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