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산하 우리풍물]8.경북 청도군 '소싸움'…관광수입 짭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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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소는 우리 민족에게 단순한 가축이 아니었다.

온갖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묵묵히 주인에게 봉사하는 소는 한 식구였다.

소는 주인의 말을 알아 듣고 팔려 갈 때는 눈물을 흘리기도 하는 영물이었다.

소는 주인을 위해서는 호랑이도 물리친다고 어릴 적 할아버지들은 얘기했다.

아이들은 소와 함께 깊은 산속에서 꼴을 뜯기며 소와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소는 욕심많은 주인에게 볼거리도 제공했다.

소싸움. 농사가 끝난 한적한 시절 벌어지는 소싸움은 농촌에 신나는 놀이마당을 열어줬다.

그러나 요즘 소는 옛날과 한참 다르다.

경운기등 영농기계화에 밀려 좁은 축사에 갇혀 고기를 제공하는 먹거리 역할만 하고 있는 것이다.

경북 최남단에 위치해 한때 섬이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외진곳이었던 청도 (淸道) 군. 청도는 6일부터 3일간 '전국민속투우대회' 를 연다.

청도대회는 작년 11월부터 동계훈련에 들어간 싸움소들의 첫 전국대회. 팔팔한 싸움소들의 각축장이 될 전망이다.

미리 가본 투우대회장소는 이서면 서원리 천변. 냇가옆 드넓은 벌판에 통나무 목책으로 된 원형의 경기장 (지름 40여미터) 이 세워져 있다.

이 경기장에 웬만한 소의 두배나 되는 1t급의 육중한 소들이 주인과 함께 입장한다.

준비동작은 앞다리의 근육을 푸는 '고래빼기' (모래를 후벼파 공중으로 퍼올리는 행위) .고래빼기가 끝나면 소들은 동시에 머리를 앞으로 들이밀며 격돌한다.

'타닥' 하는 '뿔치기' 에 이어 머리를 맞댄채 '힘겨루기' 를 하는 것이다.

"씨이익 - 킁. " 머리를 맞댄 싸움소들은 전신의 힘을 머리에 집중하며 뱃속에서 나오는 깊고 날카로운 소리를 낸다.

이때 소주인들은 각자 소옆에서 "찍어" . "밀어" 하며 고함을 치고 구경꾼들은 숨을 죽인채 소싸움을 지켜본다.

20여분이 지나자 한 소가 오줌을 갈기며 혀를 내민채 약세를 보이고 마침내 머리를 돌려 도망간다.

싸움이 끝난 것. 이긴 소의 주인은 소의 뿔과 배에 각각 빨강.노랑띠를 둘러주고 소등에 올라타 덩실덩실 어깨춤을 춘다.

청도군민인 안주봉 (42) 씨는 소싸움의 재미를 이렇게 말한다 "소싸움은 사람의 감정이 따라가는 놀이데이. 모래를 차올리며 앞으로 돌진할 땐 입이 벌어지고 서로 머리를 맞댈 때는 숨이 멎는기라. " 소싸움은 짜릿한 흥분과 진한 감동을 안겨준다.

그랬기에 청도인들은 신라시대부터 소싸움에 가문과 마을의 명예를 걸었다.

청도의 싸움소는 50여두. 전국 싸움소 (1백20여두) 의 40%를 차지한다.

투우대회에서 우승하는 싸움소는 2천만~3천만원대. 마리당 고기값으로 2백만원이 못되는 보통소의 10배가 넘는 금액이다.

청도인들의 싸움소 뒷바라지는 남다르다.

콩.미꾸라지.뱀등 각종 영양식에 십전대보탕등 한약재까지 동원한다.

이름도 '번개' '곰돌이' 등으로 공격적이다.

지금은 소의 농사일이 없으므로 타이어를 매달고 언덕을 오르거나 고목에 머리를 부딛치는 '뜰매질' 이 싸움소의 운동이다.

소주인들은 틈나는대로 뿔을 대패나 칼로 날카롭게 깍아주는 일도 거르지않는다.

얌전한 초식동물이었지만 주인을 위해 맹수의 길로 나선 싸움소. 그들의 가쁜 숨소리와 관중의 열띤 환호가 어울린 청도의 소싸움터는 우리가 상실한 세월을 되찾아 주는 생생한 '타임머신' 이다.

청도 = 송명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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