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벌써, 30년 메아리…팬들의 추억에 초대됐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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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미있다!" 김창완은 물을 튀기며 어린 아이 처럼 즐거워했다. 그는 "빗방울 소리를 음악으로 표현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춘식 기자

“시간의 냄새, 혹은 시간의 촉감이 바로 아쉬움이죠. 사람이 시간을 느끼는 유일한 형태랄까요.”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은 없는지 묻자 김창완(51)은 이렇게 대답했다. 77년 그룹 산울림을 결성하고 한국을 뒤흔든 김창완·창훈·창익 세 형제는 82년 이후 각자의 길을 걸었다. 취업을 택한 창훈은 미국에서 CJ 푸드 부사장으로 일하고 있고, 창익은 캐나다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 첫째 창완만 음악인이자 연기자의 길을 걸어왔다.

28일 서울 장충체육관, 세 형제가 97년 13집 발매 기념 공연 이후 8년 만에 모여 단독 콘서트를 연다(1544-1555).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 김창완을 2일 만났다. 동생들은 공연 1주일 전쯤 귀국할 예정이다.

김창완은 이번 주에 종영될 MBC 드라마 '떨리는 가슴'에서 상대역 최강희(29)와 사랑에 빠지는 설레는 모습을 그리며 중년 유부남들의 가슴을 흔들었다. 85년 처음 드라마에 출연했으니 연기 경력도 어느덧 만 20년이 됐다.

"연기요? 너무 재미있죠."

재미가 없으면, 그는 어디서건 졸기 시작한다. 학창 시절 교실에서도 내내 졸았다. 산울림이 상업성에서 자유로운 음악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도 어쩌면 재미없는 건 못 견디는 그의 성격 때문인 듯하다. '아니 벌써'라는 신선한 음악으로 데뷔했던 산울림은 '그대는 이미 나'라는 18분짜리 대곡을 LP판 한 면을 털어 싣는 등 온갖 실험을 했다. '꼬마야'의 꼬마 목소리도 사실은 김창완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한 뒤 속도를 조절해 톤을 바꾼 것이다. 후배 가수들이 헌정 음반을 냈을 정도로 산울림은 한국 대중 음악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 1977년 산울림 데뷔 시절 모습. 위부터 김창익.창완.창훈.

그는 이번 드라마에서 음악을 하고 싶었지만 꿈을 포기하고 평범한 가장이 된 40대 유부남을 연기했다. 창익.창훈 두 동생의 이야기와 닮았을지도 모를 모습이다. 어쩌면 음악인이기보다는 어느새 연기자의 모습이 더 익숙한 김창완 자신의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쉬움이란 그의 표현대로라면 사람이 시간을 느끼는 방법일 뿐. 알고 보면 다른 가수의 음반, 드라마 음악 프로듀서에다 동요집까지 내며 끊임없이 음악 활동을 해왔다.

"지금도 곡은 꾸준히 만들어요. 요즘엔 프로그레시브 록(실험적이고 복합적인 록의 장르), 일렉트로니카(전자 음악 계열)를 하고 싶은데, 집에서 옛날 장비를 다 내다 버리는 바람에 못하고 있어요. 새 장비를 사서 1~2년을 들여 익힐 생각을 하니 엄두가 안 나서요."

그는 '산울림-김창완'이란 이름으로는 꾸준히 무대에 섰다. 이번에 '김창완'이란 꼬리표를 뗀 데는 열성팬의 뒷받침이 있었다. 산울림 팬클럽은 자비를 들여 신문 지면에 콘서트 광고를 내기도 했다.

"사실 여건만 되면 언제든 모이고 싶었어요. 산울림이 실제로 활동한 건 2년 반 정도 뿐인데 그 시절을 30년간 추억으로 간직해온 분들의 바람이 모여 콘서트가 성사된 거죠. 그 자리에 우리 형제가 초대된 기분이에요."

이경희 기자<dungle@joongang.co.kr>
사진=김춘식 기자 <cyjb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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