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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푸르게 한 일등공신인데, 불량수목이라니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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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호 04면

이달 초 벌목된 서울 남산 기슭의 아카시아 나무들. 서울시는 아카시아나 현사시나무 등을 베어내고 그 자리에 소나무ㆍ참나무ㆍ팥배나무 등 우리나라 고유 수종을 심는 ‘도시 생태림 조성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저는 서울 남산 케이블카 옆 비탈에서 40년간 살아온 아카시아 나무(위 사진)입니다. 미국의 달 탐사 우주선 아폴로 11호가 발사되던 1969년 1년생 묘목으로 남산에 정착했습니다. 사실 저는 더 이상 살아 있는 나무가 아닙니다. 밑동 지름이 40㎝를 넘는 아름드리였지만 지금은 톱밥처럼 산산조각 나 장충동 국립국장 옆 비탈에 뿌려져 있습니다. 이제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그렇게 세월이 흘러 가면 흙으로 돌아가겠지요. 짙은 아카시아 향기를 한창 뿜어대야 할 5월에 대체 무슨 일이냐고요? 제 사연은 이렇습니다.

온난화에 벌목에, 향기 잃은 남산 아카시아의 항변

지난주 남산서 170그루 잘려 나가
흰 꽃망울이 막 터지던 지난주 초 우리 동네에 전기톱을 든 인부들이 갑작스레 들이닥쳤습니다. 자칫 가파른 산비탈 아래로 떨어질 수 있는 위험한 곳이지만, 이들은 용감무쌍하게 밀고 들어와 전기톱으로 저와 동료 170그루를 잘라 버렸습니다. 그들은 잘린 밑둥치에 ‘근사미(글라이포세이트)’라는 이름의 강력 제초제까지 발랐습니다. 근사미는 그루터기를 타고 뿌리 끝까지 스며들어 우리의 손과 발을 말려 죽이고 있습니다.

남산 식구들뿐이 아닙니다. 사직동 등 종로구를 지나는 산성 주변에 있던 동료 600여 그루와 은평구의 100그루 등 서울 시내 수천 그루의 아카시아 식구들이 같은 운명을 맞았습니다. 너무 늙어 죽어 가던 친구들도 있었지만, 열 가운데 아홉은 아직도 푸른 잎을 뽐내며 생생하게 살아 있던 놈들입니다. 우리가 잘려 나간 자리에는 소나무와 참나무·팥배나무 등이 들어온다고 하더군요.

아이로니컬하게도 우리를 비명횡사하게 한 장본인은 서울시 ‘푸른도시국’입니다. 서울시는 우리를 ‘불량 수목’으로 지목했습니다. 이미 말라 죽은 나무가 많아 보기에도 나쁜 데다 괜찮아 보이는 나무도 나이가 많아 언제 넘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를 둘러싼 나쁜 소문들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번식력이 너무 강해 주변의 산림을 훼손한다거나, 식민지 시절 일본인이 조선의 산하를 망쳐 놓기 위해 들여놨다는 것입니다.

서울시 구박 외에도 고민 많아
사실 우리는 이 땅에 있지 않았습니다. 이 땅에 우리를 처음 들여온 사람은 일본인이 맞긴 합니다. 산림청이 소장하고 있는 조선총독부 임업시험장 자료(시보)에 따르면 1891년 일본인 사카키가 중국 상하이에서 묘목을 들여와 인천에 심은 것이 최초라고 합니다. 이후 일제시대 때 철도 침목 용도로 들여와 많이 심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 본격적으로 들어온 건 1960년대였습니다. 당시 시대가 요구한 당당한 미션을 가지고 이 땅을 찾았습니다. 60년대만 하더라도 이 나라의 산은 온통 붉은색이었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헐벗은 산을 녹화하기 위해 북미에서 우리를 들여왔습니다. 우리는 60, 70년대 산림녹화의 최대 공신이었습니다.

조선의 산하를 황폐화하기 위한 ‘악역’의 운명을 갖고 이 땅에 왔다는 말은 억울합니다. 우리는 콩과 식물인지라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고, 뿌리혹 박테리아를 이용해 토양을 기름지게 만들어 왔습니다. 산사태도 막아 왔습니다. 산비탈에 뿌리를 내리면서 버틸 수 있는 나무는 우리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매년 300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돈나무’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벌꿀 생산의 70% 이상을 우리 아카시아가 감당해 왔습니다.

인정합니다. 우리도 잘못한 게 있습니다. 벌초하시는 분들은 우리를 제일 싫어하죠. 볕이 잘 들면서도 나무가 없는 묘지는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곳입니다. 게다가 잘라도 잘라도 순식간에 자라 오르는 끈질긴 모습에 아마도 질렸을 겁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남의 땅을 빼앗는 파렴치한은 아닙니다. 임자가 있는 울창한 숲 속에서는 우리가 번식할 수 없습니다. 단지 나무가 사라진 땅, 황폐한 땅이 있으면 우리는 빠르게 자랄 수 있습니다. 자라는 데 햇볕이 많이 필요한 ‘양수(陽樹)’의 특성일 뿐입니다.

올해 봄 날씨 더워 향기 약해져
서울시가 굳이 박대하지 않아도 우리는 요즘 고민이 많습니다. 그중 하나가 지구온난화 문제입니다. 요즘 “아카시아 꽃은 피었는데 향기가 안 난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죠. 이유가 있습니다. 꽃향기는 꿀 분비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는 봄 기온이 너무 덥고 건조하면 꿀을 잘 만들지 못합니다. 한낮의 온도가 섭씨 24~27도, 습도는 최소 15% 이상 돼야 합니다. 밤낮의 온도 차가 심한 것도 싫어합니다. 최근 봄 날씨는 온통 우리가 싫어하는 조건뿐이었습니다.

2000년부터 번진 황화현상과 잎혹파리병도 우리를 한때 위기로 몰아넣었습니다. 2004년이 가장 심했죠. 그때는 예년의 절반밖에 꿀을 만들지 못했습니다. 그나마 지난해부터 조금씩 살아나고 있는 중입니다.

우리 아카시아 나무 대부분이 이제는 죽을 때가 돼 간다는 것도 걱정입니다. 우리의 수명은 보통 40년입니다. 60, 70년대에 본격적으로 심어졌고 80년 이후에는 더 이상 새로 심어진 것이 없습니다. 이 때문에 상당수의 아카시아 나무는 길게는 50년, 짧아도 30년 정도의 세월을 살았습니다. 아마도 산에 올라 보면 푸른 나무 사이로 잎을 피우지 못하고 말라 죽은 아카시아 나무를 본 적이 있을 겁니다. 바로 그들이 수명을 다한 친구들입니다. 우리는 씨를 떨어뜨려 자손을 번식할 능력이 부족합니다. 소나무나 참나무가 울창한 기존 숲 속에서 그들을 이겨 가며 살 능력도 없습니다.

아, 억울한 게 하나 더 있습니다. 우리 이름은 원래 아카시아가 아닙니다. 아카시아라는 족속은 남반구에서 자라는 상록수입니다. 우리의 정확한 이름(학명)은 ‘로비니아 수도 아카시아(Robinia Pseudo Acacia)’입니다. 로비니아라는 이름을 가진 가짜 아카시아라는 뜻이지요. 외국에서는 로비니아나 로커스트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산림청과 학계가 진짜 아카시아와 구별하기 위해 ‘아까시나무’라고 이름을 지었죠.



도움말 주신분=경북대 박용구 교수, 양봉협회 최규칠 사무총장, 동국대 오충현 교수, 산림과학원 유근옥·최형순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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