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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세금 폭탄’ 하나 둘 제거…외환銀 매각 재시동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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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호 03면

론스타의 움직임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2006년 검찰이 압수 수색할 당시 론스타 관계사가 입주해 있던 서울 역삼동 스타타워 빌딩 안의 안내판. 중앙포토

11년 전 아시아 외환위기 때 미국 텍사스에 연고를 둔 자본들은 기회를 좇아 아시아로 질주했다. 주(州) 소득세가 없고 텍산 스테이크처럼 통 크게 ‘고(高)위험 고(高)수익’을 노리는 투자자가 많아 그렇다는 풀이가 그럴듯하게 나왔다. 한국에도 상륙했다. 제일은행과 한미은행을 사들여 팔고 떠난 뉴브리지캐피털과 칼라일, 외환은행을 인수한 론스타가 대표적이다.

2009년 봄, 론스타의 대반격

이 중 론스타의 식욕이 가장 왕성했다. 거느린 기업만도 한때 극동건설ㆍ서통 등 14개에 달해 공정거래위원회가 기업집단 지정을 검토했을 정도다. 덩치를 불리면서 ‘먹튀(먹고 튄다)’ 논란의 표적이 됐다. 여론이 나빠지자 노무현 정부는 팔을 걷어붙였다. 2005년 가을부터 국세청ㆍ감사원ㆍ금융감독원 등 사정기관이 앞장서 론스타를 전방위로 압박했다. 이 통에 론스타 측은 수천억원의 양도소득세와 등록세를 추징당했다. 외환은행 매각도 두 차례나 무산됐다. 관계자들은 옥살이의 고초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매듭이 조금씩 풀리고 있다. 지난해 11월 론스타의 외환은행 헐값 인수 의혹사건이 1심에서 무죄 선고가 내려진 데 이어 스타타워 등록세 중과 사건 등에서 잇따라 유리한 판결이 나왔다. 이른 듯하지만 외환은행 매각도 재시동이 걸릴 조짐이다. ‘카우보이’ 론스타의 대반격이 시작된 것일까.

서울시 패소확정 땐 등록세 환불 사태
대법원은 지난달 9일 론스타가 쾌재를 부를 판결을 내렸다. 등록세를 중과한 서울시(종로ㆍ강남구청장) 주장을 모두 배척하고 고등법원에 재판을 다시 하라고 돌려보낸 것이다. 2심에서 이겼던 서울시로서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셈이다. 서울시의 패소가 확정되면 대규모 환불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유사 소송 69건(886억원)이 직접적 영향권인 데다 850여 회사에서 거둬들인 2400억여원의 등록세와 이자도 돌려줘야 할 판이다. 서울시는 소송 대리인을 법무법인 광장으로 교체하고 재판에서 이길 새 논리 개발에 골몰하고 있다.

이 사건을 이해하려면 론스타가 등장하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996년 1월 자본금 5000만원에 플라스틱류 등을 파는 ‘씨앤제이트레이딩’이 설립됐다. 사업이 여의치 않았는지 7개월 만에 문을 닫는다. 이 회사의 운명이 바뀐 것은 2001년. 돌연 ‘㈜스타타워’로 개명하고 서울 역삼동의 45층짜리 스타타워(현 강남파이낸스센터) 빌딩의 주인이 됐다.

이런 변신의 원인을 제공한 것은 지방세법이다. 대도시(과밀억제권역)에 세워진 지 5년이 안 된 법인의 경우 부동산 매입 시 등록세가 중과(세 배)된다는 규정이 있다.

론스타 입장에선 서울 출신에 다섯 살짜리, 그것도 사업이나 종업원 인수 부담이 없는 씨앤제이트레이딩이 절세용으로 그만이었다. 론스타 측은 씨앤제이트레이딩을 사들인 뒤 법인명ㆍ대표이사ㆍ본점ㆍ자본금ㆍ목적사업을 모두 바꿨다. ㈜스타타워는 대표이사만 있고, 나머지 관리나 운영은 론스타 관계회사(론스타어드바이져코리아, 허드슨어드바이져코리아)가 맡았다.

론스타가 이 빌딩을 사들일 때만 해도 탈이 날 것 같지 않았다. 시행사들이 흔히 쓰던 절세 기법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용도의 휴면 법인은 2000만~3000만원에 거래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벤처 붐이 불었을 때 설립됐다 일찍 문을 닫은 법인이 절세용으로 둔갑했다. 서울시가 이를 문제 삼은 것은 2006년이다. 서울시는 ‘휴면 법인을 인수한 시점을 법인 설립 시점으로 봐야 한다’며 론스타 측에 등록세 253억원을 부과했다. 론스타는 등록세를 모두 낸 뒤 곧바로 소송을 제기했다. 서울시도 주요 사건으로 정해 대응한 끝에 2007년 12월 ‘휴면 법인을 이용한 부동산 취득은 중과 대상’이라는 서울고법의 판결을 이끌어 냈다. 휴면 법인 인수 이후 인적ㆍ물적 조직 변경은 실질적인 법인 설립 행위로 볼 수 있고, 지방세법의 취지와 실질 과세 원칙에 비춰 등록세 중과는 정당하다는 것이 판결의 골자였다.

하지만 이명박(MB) 정부 들어 대법원은 이 판결을 뒤집었다. 조세법률주의상 명문의 규정이 없는 한 ‘휴면 법인 인수일을 법인 설립일로 볼 수 없다’고 못 박았다. 2400억여원의 등록세를 추징한 핵심 논리가 와해된 것이다.

국세청도 스타타워 세금 일부 돌려줄 판
서울시는 소송비용이 더 들더라도 처분 사유를 ‘법인 설립 5년 내 부동산 등기’에서 ‘본점 설치 5년 내 부동산 등기’로 변경해 명확한 판결을 받아 보겠다고 밝혔다. 서울시 유상호 세제과장은 “입법 취지나 목적을 배제하고 법조문을 해석한다면 탈세라는 불법 행위를 정당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직 다툴 여지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한 고문 변호사도 있다. 서성건 변호사는 “폐업하면서 본점이 실효됐다가 2001년 6월 새로운 사업자등록으로 본점을 설치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이 경우 론스타 측 부동산 취득은 본점 설치 후 5년 이내의 중과 대상이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소송 전망은 밝지 않다. 고문변호사 4명 중 3명마저 부정적 의견을 냈기 때문이다.

서울시에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서울시는 지금까지 등록세 중과 같은 수도권 규제는 풀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한쪽에서는 수도권 규제를 풀어 달라고 하면서 한쪽에선 그런 규제에 근거해 세금을 추징하고 있는 것 자체가 자가당착일 수 있다는 얘기다. 법원이 휴면 법인을 이용하는 게 문제 없다고 판결할 경우 등록세 중과는 있으나마나 한 규제가 된다. 휴면 법인을 이용해 얼마든지 중과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이미 같은 사유로 소송이 진행된 광장종합지앰씨ㆍ비케이컴ㆍ강남금융센터ㆍ큐브아고라 등 4건에서 패소했다.

론스타는 이에 앞서 스타타워 매각 차익을 둘러싼 소송에서도 실속을 챙겼다. 지난 2월 행정법원 판결에서 국세청 과세 논리의 일부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론스타가 스타타워 빌딩을 팔아 큰 차익을 얻고도 세금 한 푼 내지 않은 데서 비롯됐다. 론스타는 2004년 12월 스타타워 빌딩을 싱가포르투자청(GIC) 측에 팔았다. 빌딩을 소유한 ㈜스타타워의 주식을 파는 형식이었다. 1001억원에 사들인 지분 100%를 3510억여원에 팔았다. 차익이 비용 59억원을 제외하고도 2450억원이나 됐다. 론스타는 그러나 아예 세금 신고를 하지 않았다. 주식을 판 주체가 벨기에 법인 스타홀딩스(Star Holdings SCA)이므로 주식을 팔아 나온 이득에 대해 한국이 세금을 매길 권한이 없다는 것이었다. 한국ㆍ벨기에 간 맺은 조세조약을 근거로 들었다.

그러나 국세청은 2005년 12월 양도소득세 등 1018억여원을 추징했다. 벨기에 법인이 조세 회피 목적으로 설립된 도관회사(conduit company)에 불과하므로 수익의 최종 귀속 주체인 론스타펀드Ⅲ LP(유한 파트너십) 등이 세금을 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마침 한ㆍ미 조세조약에는 부동산을 과다 보유한 법인의 주식을 양도해 얻는 차익은 부동산 양도차익과 똑같이 본다는 규정도 있었다.

서울행정법원은 얼핏 국세청 손을 들어 주는 듯했다. LP를 개인으로 볼 수 없으므로 소득세 대신 법인세를 부과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양도차익 2450억원을 법인 소득으로 볼 경우 법인세는 2004년 당시의 세율(27%)을 적용할 때 660억원 정도다. 론스타로서는 결과적으로 350억원 남짓한 세금을 줄일 수 있게 된 것이다.

산업은행, 외환은행과 물밑 접촉설도
그러나 론스타는 여기서 물러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 푼도 내지 않아도 된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할 전망이다. 론스타는 “한국과 벨기에의 조세조약에 규정이 없는 한 실질과세의 원칙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해 왔다. 세무조사까지 한 국세청도 물러서기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국세청 관계자는 “대법원까지 갈 각오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론스타는 장기간 표류할 것 같았던 외환은행 매각까지 가늠해 볼 수 있게 됐다. 론스타가 얘기를 꺼내기도 전에 산업은행ㆍ우리은행 등이 먼저 인수설을 흘려 값을 올려 주는 형국이다. 금융권에서는 민유성 산은 행장과 외환은행 이사회 의장인 리처드 웨커 전 행장이 물밑 접촉에 들어갔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론스타는 외환은행 매각 자문사를 미국계 씨티그룹에서 유럽계 크레디스위스(CS)로 변경해 인수자를 계속 물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딜이 무르익은 상황은 아닌 듯하다. 주가가 금융위기 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해 론스타와 매수자 간 가격 절충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다만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외국 자본에 대한 반감이 잦아들고, 법원이 잇따라 론스타에 유리한 판결을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론스타의 입지는 한층 탄탄해진 것이 사실이다.

한편 론스타는 16일 세금 소송, 외환은행 매각 등 여러 이슈에 대한 중앙SUNDAY의 질의에 “현재로선 언급할 게 없다”고 홍보대행사 인사이트를 통해 밝혀왔다.



도관회사(導管會社·Conduit Company)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 돈이 그냥 거쳐 가는 통로로 만든 회사라는 의미다. 실질적인 소득은 물론 자산에 대한 지배 및 관리권도 없다. 직원 한두 명이 연락 업무를 한다는 점에서 실체가 없는 서류상 회사인 페이퍼 컴퍼니와 구별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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