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밤 중앙지법 판사회의에선 무슨 일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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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철 대법관이 대법관 직무를 수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러나 사퇴 촉구는 하지 않는다.” 14일 밤 늦게까지 진행된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회의는 다소 모호한 결론을 내렸다. 사실상 사퇴를 촉구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지만 회의 참석자들은 직접적인 ‘사퇴 촉구’ 결의는 없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회의 결과는 팽팽하게 맞선 ‘강경’ 입장과 ‘온건’ 입장을 절충한 것이라는 게 참석자들의 설명이다.

이날 오후 6시30분 시작된 회의가 격렬해진 것은 오후 9시쯤 신 대법관의 거취 문제를 논의하면서부터였다. 앞서 ▶개별 사건에 대한 신 대법관의 보석 자제 주문 등이 재판권을 침해했는지 ▶사건을 특정 재판부에서 맡도록 한 것이 적절했는지 ▶앞으로 제도개선 연구모임을 만들 것인지에 관해선 순조롭게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신 대법관 거취 문제에 들어서자 “물러나야 한다”는 의견과 “신분이 보장된 법관의 거취를 논의하는 것 자체가 적절치 않다”는 시각이 부딪쳤다.

거수 표결 방식으로 진행된 다른 안건들과 달리 신 대법관 거취 문제는 무기명 투표로 결정했다. 그만큼 조심스러웠다는 얘기다.

투표 결과 ‘대법관 직무 수행 부적절’ 의견이 더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다수와 소수의 차이는 크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판사는 “표결 결과만 공개할 경우 언론에서 ‘사퇴 촉구’로 보도할 것을 우려해 ‘사퇴 촉구 않는다’는 부분을 함께 밝히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신 대법관 거취에 관한 자신들의 입장을 밝히면서도 ‘사퇴 압력’ 시비를 차단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회의가 끝난 뒤 참석자들은 “신 대법관이 알아서 판단하라는 뜻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했다.

이날 신 대법관 거취에 관한 투표가 진행되면서 법원 안팎에 긴장감이 고조됐다. 김용담 법원행정처장은 밤 11시30분쯤 서울중앙지법을 전격 방문해 법원 수뇌부와 긴급 회동을 했다.

김 처장은 직접 회의장을 찾아 “사퇴 촉구는 사법부 전체에 심각한 후유증을 낳을 수 있다”고 설득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판사들이 절충적인 입장을 발표할 것으로 전해지자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  

박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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