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당선자 비자금 수사]새로 밝혀진 사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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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검찰 수사결과 지난해 10월 당시 신한국당의 김대중 대통령당선자 비자금 의혹 고발내용과는 다른 몇가지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고발인측에서 金당선자의 비자금이라고 폭로한 친인척 계좌 3백42개중 처조카 이형택씨가 관리한 23개 계좌를 제외하곤 金당선자와는 무관한 개인통장으로 확인됐다.

또 92년 대선.총선을 앞두고 당시 평민당 (민주당) 의 정치자금 모금과정이 일부 드러났다.

◇ 친인척 계좌 = 조사결과 당시 신한국당의 폭로내용은 교수.변호사.건축업.개인사업 등을 하는 친인척들의 경제적 여건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액수를 부풀렸으며 계좌의 성격도 상당히 왜곡한 것으로 드러났다.

예컨대 고발장에 35억원이 입금됐다고 기재된 김홍일 (金弘一) 씨의 처남 尹홍열씨 명의 동화은행 서역삼지점 계좌의 경우 尹씨가 운영하는 개인회사의 계좌로 확인됐다.

이 계좌를 통해 93년 1월부터 97년 6월까지 신용카드대금이 결제된 횟수만 무려 1천4백여차례. 또 중앙경리단.상암기획.대한보증보험 등 관련 업체로부터 업무결제 대금을 온라인이나 수표로 입금받는 등 입출금의 기간.횟수.형태로 보아 공식적인 사업용 통장이 확실하다는 게 검찰의 결론이다.

이와 함께 김홍일 의원의 계좌 5개는 후원자들이 10만원대의 소액 후원금을 실명 (實名) 으로 송금한 통장으로 밝혀졌다.

고발인측은 이 계좌가 金당선자의 비자금 모금통장이라 주장하고 있지만 소액의 수표를 반복적으로 입출금했고 신용카드 대금 등을 결제한 것으로 볼 때 타인의 자금을 은닉하기 위한 통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 고발장에 포함된 金당선자의 둘째처남 구위자씨의 한미은행 계좌는 남편인 이세작 변호사 수입을 입금해 생활비 등으로 사용한 가사용 통장으로 확인됐다.

◇ 야당의 정치자금 모금과정 = 검찰은 92년 당시 평민당 (민주당) 의원 10여명이 총선.대선비용 명목으로 동아건설.삼성.진로.대동건설.대우 등 5개 기업으로부터 모두 39억원을 받은 사실을 밝혀냈다.

검찰 관계자는 "이들 기업은 대부분 야당측에서 '보험금을 내라' 는 식으로 먼저 요구해 정치자금으로 지원했다" 며 당시 정치자금 수수관행이 여야간에 금액차이만 있었을 뿐 광범위하게 이뤄졌음을 시사했다.

수사 결과 이들 기업으로부터 정치자금을 모금하는 일은 모두 金당선자의 측근인 권노갑 (權魯甲) 전의원 등 측근들이 극비리에 전담했으며 당 사무총장에게 전달돼 선거자금 및 당 운영비로 사용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權전의원은 92년 12월 동아건설로부터 15억원, 92년 3월 삼성으로부터 7억원을 받아 '동교동 금고지기' 라는 별명을 확인케 했다.

또 임춘원 (林春元) 전의원은 91년 7월 평소 친분이 있던 진로그룹 장진호 (張震浩) 회장으로부터 5억원, 당시 민주당 재정위원이던 김인곤 (金仁坤) 의원 역시 91년 9월 잘 아는 사이인 대동건설 박헌동 회장으로부터 2억원을 받아 야당의 정치자금은 '개인 채널' 을 통해 극비 모금된다는 속설을 입증했다.

金당선자는 직접 정치자금을 받지는 않았지만 모두 사후 보고를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 관계자는 "당시 기업총수들이 선거를 앞둔 시점에 야당총재를 직접 만난다는 게 부담스러워 측근을 통해 정치자금을 건네준 것 같다" 고 설명했다.

또 이들 기업이 준 자금은 여당에 준 정치자금보다 훨씬 복잡한 세탁과정을 거쳐 전달됐다.

예컨대 대우그룹이 민주당에 20억원을 제공했다는 고발내용은 두개의 가명계좌를 거쳐 자금흐름이 끊기는 바람에 확인하지 못했다.

정철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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